2003년 금강산 온정각에서 헤어지는 순간을 차마 놓지 못하는 이산가족들. 70년 남북 분단 역사에서 이산가족의 만남은 수차례 있었지만 ‘짧은 만남 긴 이별’이란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동아일보DB
변영욱 차장·‘김정은.jpg’ 저자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웃으며 취재진에게 질문했다. 현장의 취재진과 남북 참모들은 박수로 긍정의 답을 했다. 나도 ‘역시 선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환하게 웃으며 그간의 은둔 이미지를 벗고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이미지 메이킹의 선수’.
김정은만큼 카메라에 대한 이해가 높은 지도자도 드물다. 사진을 잘 이용할 줄 안다. 권력을 잡은 직후 전국을 돌며 군인, 인민들과 함께 대규모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약 15개월(2012년 1월∼2013년 3월)간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을 전수 조사해 봤더니 약 12만4000명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인화 과정을 거친 후 찍힌 이들의 가정에 배달돼 거실과 안방 액자로 걸렸을 것으로 보인다. 집 안에 떡하니 걸린 ‘위대한 영도자’의 사진들. 이는 그의 권력 기반을 다지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을 것이다.
김정은에게 사진은 정치 도구일 뿐이지만, 정작 사진 한 장이 절실한 이들이 있다. 이산가족들이다. 1954년 강소천의 단편소설 ‘꿈을 찍는 사진관’에서 주인공은 “살구꽃 활짝 핀 내 고향 뒷산에서 같이 놀던 순이”의 얼굴을 사진으로 갖고 싶어 했다. 흑백사진 한 장이라도 챙겨 헤어진 가족들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없는 이산가족이 많다. 분단이 시작된 1940년대 말, 사진은 아직 대중화되지 못했고 큰 도시였던 평양에서도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이 많지 않아 사진은 진귀한 것이었다. 절절하게 그리운 가족 사진 한 장 챙기지 못하고 헤어진 사람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사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에서는 상봉 사진과 화면을 주민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현장에서 북한 사진기자를 만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최고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치열하게 취재해 상세하게 보도하는 것과는 달리 말이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뉴스로 다루지 않는 이유는 불분명하다. 북한 정치에서 경미한 이슈일 수도 있고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 차원의 이미지 관리 노력일 수도 있겠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김정은이 밝은 미래를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가 진짜 북한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바꾸길 원한다면 분단의 가슴 아픈 피해자들인 이산가족부터 챙겨야 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끼리 쉽게 만나고 사진 찍을 수 있도록 전향적이면서도 큰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 많은 이산가족의 상봉 사진이 남북한의 각 가정에 배달되고 컴퓨터와 휴대전화 화면에 저장되는 것만큼 감동적인 장면이 또 있을까.
다음 달 혈육을 만나는 분들은 그나마 운이 좋다. 6월 말 기준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생존자만 5만7059명이니 행사 참가를 위한 경쟁률은 570 대 1이다. 선정되지 못한 이산가족들은 언제 돌아올지 모를 ‘사진 찍을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변영욱 차장·‘김정은.jpg’ 저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