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내가 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정신분석학에서는 자기애(自己愛)라고 부릅니다. 길거리를 걷거나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어보아도, 사람이 많은 곳을 다녀보면 금방 깨닫습니다. 자기애의 정도가 너무 높은,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진 세상에서는 나는 남들이, 남들은 내가 상처를 준다고 쉽게 생각합니다. 서로 간에 누가 누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개념 없이 산다는 말입니다. 스쳐가는 사이에도 무시당하거나 이용당했다고 느끼고 가끔은 분노를 거칠게 표현한다면 가족, 직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상처를 주고받는 일은 현실에서, 상상에서 모두 일어납니다. 상처받은 마음은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람들은 상처받은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화해하라고 합니다. 때로는 사회나 종교가 그러한 역할을 합니다. 나는 묻습니다. 왜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과 화해해야 하나요? 용서란 그 사람이 내게 한 짓을 잊으란 말인데 나는 잊을 수 없습니다. 화해란 말에는 복종이란 뜻도 담겨 있습니다. 나는 적어도 내가 받은 만큼 그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나는 보복할 방법을 찾으려 애씁니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자기가 내게 한 짓을 뉘우치고 사과하면 용서와 화해를 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뱉어내는 사과의 말과 행동에는 내 입장, 내가 겪은 고통을 고려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진정한 뉘우침보다는 조건을 달고 사실을 부정하는 면피용(免避用)입니다. “피해를 주었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는 회개는커녕 후회도 아닙니다. 내 고통에 대한 완벽한 무시입니다. 왜 내가 그런 사람을 용서하고, 왜 내가 그런 사람과 화해를 해야 하나요? 용서와 화해? 정말 멋있는 말입니다! 남이 당한 경우에는 나도 그렇게 말하고 권할 수 있습니다. 내가 당하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가해자에 대한 보복에 매달리는 매 순간 내 삶은 그만큼 사라져 갑니다. 보복은 양날의 칼과 같이 어디를 잡아도 내게 상처를 남깁니다. 하지만 알면서도 멈출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지만 무력감에 시달립니다. 어쩔 수 없이 지쳐갑니다. 지금이라도 포기해야 할까요? 그러기엔 너무 깊게, 너무 멀리 왔습니다.
누군가 내게 말합니다. 이제 그만 용서하고 화해하고 내 인생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은 쉽습니다. 용서와 화해를 누구도 내게 강요할 수 없습니다! 보복을 포기하라고 그 누구도 나를 압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하고 허탈할까요? 내 삶은 삶이 아닙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든 용서와 화해이든지 간에 우선적으로 피해자는 자신의 위치를 상향조정해야 합니다. 즉, 을이 아닌 갑의 위치에 자신을 놓아야 가해자를 갑이 아닌 을의 위치로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말은 쉽다고요? 맞습니다. 노력과 인내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마음에서 가해자-피해자 관계를 새롭게 세우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분노 상태에서 한 걸음 물러나 문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둘째, 분노를 경감시키면 싸울 수 있는 힘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습니다. 싸움은 분노의 에너지가 아닌 냉철한 판단의 힘으로 하는 겁니다. 셋째, 정리된 입장을 가져야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에서 최상의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용서와 화해 모두 개인 차이가 큰 능력입니다. 능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용서도, 화해도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사회나 종교가 나서서 개인에게 무조건 용서하고 화해하라고 압력을 넣는다면 그것은 낫지 않은 상처에 소금 뿌리는, 집단적 폭력 행위입니다. 용서와 화해 모두 준비가 되어야 가능합니다. 용서와 화해가 분노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세상으로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피해자를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애매한 말로 포장된 후회와 회개는 거짓입니다. 가해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단순히 분노와 보복만을 억누르는 선한(?) 용서와 화해도 거짓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