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기무사 계엄문건 공개]67쪽 세부자료 무슨 내용 담겼나
청와대는 이 자료를 근거로 지난해 3월 기무사 등 군이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릴 경우 즉각 계엄령을 시행할 준비를 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청와대는 이 자료를 공개하면서도 관련자 파악 및 처벌 여부에 대해서는 군 특별수사단의 몫이라며 말을 아꼈다. 군 스스로 대대적인 개혁에 나서라는 신호다.
○ 기무사 “국회 계엄령 해제 표결 막아야”
자료에는 “당정 협의를 통해 (당시) 여당 의원들이 ‘계엄 해제’ 국회 의결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명시돼 있다. 이어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현행범 사법처리’의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 시 구속수사 등 엄정처리 방침 경고문”을 발표한 뒤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 검거 후 사법처리해 의결정족수 미달을 유도”라고 돼 있다.
○ 언론·SNS·국정원·사법부 통제 방안도 마련
자료에 따르면 기무사는 총 9개 반으로 구성된 ‘계엄사 보도검열단’ 운영 계획도 마련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KBS·YTN 등 22개 방송 및 26개 신문, 연합뉴스·동아닷컴 등 8개 통신사와 인터넷 신문사에 대한 통제 요원을 편성해 보도를 통제하도록 했다”며 “인터넷 포털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차단, 유언비어 유포 통제 등의 방안도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어 “언론사별로 (보도검열단) 몇 명이 어느 기관(언론사)에 가는지까지 나와 있다. 보도검열단은 신문 가판, 방송·통신 원고, 간행물 견본, 영상제작품 원본을 제출받아 (사전에) 검열할 계획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청와대 공개자료에는 ‘주한(駐韓)무관·외신기자 대상 외교활동 강화’ 항목도 있다. 김 대변인은 “우리나라의 각국 대사관에 파견돼 있는 무관(武官)단과 외신기자를 대상으로 계엄령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등의 내용이 ‘외교활동 강화’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을 계엄사령부가 통제하는 방안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김 대변인은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하고 있으며,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토록 조치하는 등 국정원 통제 계획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기무사 자료의 11번 항목은 ‘합동수사본부 편성 및 유관기관 통제 방안’, 12번은 ‘계엄사 군사법원 설치’다. 여권 관계자는 “언론과 SNS, 검찰과 경찰은 물론이고 입법부인 국회, 사법부인 법원, 그리고 정보 수집까지 모든 것을 군이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이 자료를 근거로 청와대는 당시 군과 기무사가 계엄령을 단순히 검토한 것이 아니라 실제 실행하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만에 하나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이 아닌 기각 결정을 내렸다면 이 자료가 실제 현실화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는 관련자 수사, 위법 여부 등에 대해서는 “군 특별수사단이 수사를 통해서 밝혀야 될 내용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청와대가 일부 내용을 공개한 67쪽짜리 자료는 송 장관이 올 3월에 기무사 계엄령 문건(8쪽)과 함께 기무사령관에게 보고받고도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은 내용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송 장관이 3월 기무사의 보고 직후 계엄령 문건과 세부자료를 청와대에 제출하고, 처리 문제를 협의했다면 사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송 장관도 특수단의 조사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거취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른 소식통은 “청와대가 송 장관의 문건 보고 누락을 중대 사안으로 인식해 후속 조치를 취할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의 세부자료 공개와 관련해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측은 계엄령 검토와 마찬가지로 단순 검토 차원에서 작성됐다는 입장을 고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