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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가 바꾼 ‘저녁 있는 삶’…문화생활·홈술족 ‘행복한 고민’

입력 | 2018-07-22 15:00:00


동아일보DB

직장인 백상현 씨(33)는 요즘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대신 중국어 단어장을 더 자주 들여다본다. 잦은 야근으로 지하철만 타면 객실 손잡이를 붙잡고 졸기 바빴던 그가 최근에는 ‘수험생 모드’가 된 것이다. 백 씨의 이같은 변화는 7월부터 시작된 주 52시간 근무로 중국어 학원을 다니게 된 덕분이다. 백 씨는 “야근이 줄면서 몇 년 전부터 하고 싶었던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면서 “퇴근 이후 운동이나 문화생활 등으로 저녁을 보내는 동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가 시작된 지 3주가 지나면서 직장인들의 저녁이 달라지고 있다. 퇴근 후 취미나 문화생활 등을 하며 이른바 ‘저녁 있는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2일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가 시작된 이달 들어 18일까지 오후 6시 이후 문화센터 강좌를 이용하는 고객 수가 지난해 동기 대비 2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백화점 측은 저녁 시간대 강좌를 지난해 여름학기 대비 30% 추가 개설했다.

야근이나 다음 날 업무 부담으로 주말에나 갈 수 있었던 영화관이나 서점을 찾는 발길도 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6월 마지막 주(25~28일) 전국 영화관 일평균 이용객 수는 30만912명이었지만 주 52시간 근무가 시작된 7월 첫째 주(2~5일) 일평균 이용객 수는 39만3362명으로 눈에 띄게 늘었다.

CGV 관계자는 “여름 대작이 7월부터 나오기도 했지만 바뀐 근무제도로 여가시간이 늘어난 점이 일평균 관람객수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CGV가 전국 성인남녀(20~44세) 65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7명이 “향후 평일 여가시간을 활용해 영화 관람을 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바 있다.

‘야근 후 한 잔’ 문화도 주 52시간 근무 시행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1주일에 3일 정도 퇴근 이후 술자리를 가지곤 했던 8년차 직장인 김모 씨(33)는 주5일 근무제 이후 저녁 운동을 시작하면서 술자리를 갖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 김 씨는 “이번 달부터 헬스클럽을 등록했다. 다른 동료들도 취미활동이나 공부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의 만남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집에서 혼자 술을 즐기는 ‘홈술족’이 늘어난 점도 눈에 띈다. 운동이나 문화생활 이후 집으로 돌아와 ‘술 한잔’하는 문화가 생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최근 한 달(6월 19일~7월 18일) 동안 와인잔(14%), 맥주잔(112%), 양주잔(10%) 매출이 크게 늘었고, 클럽에서나 쓸 것 같은 화려한 특수조명 판매량이 150%나 급증했다.

저녁 식사를 가족과 함께하는 이들이 늘면서 가정간편식 등 관련 매출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직장인 한모 씨(39)는 “퇴근시간이 들쑥날쑥 해 직장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집에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퇴근이 빨라지면서 최근 1주일에 2, 3회는 가족들과 같이 밥을 먹고 있다”면서 “쉽게 만들 수 있는 간편식으로 아이와 아내에게 ‘아빠표 저녁밥상’도 차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