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주말 나란히 미국에서 한미 간 정책조율에 나섰다. 정 실장은 워싱턴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교착 상태에 놓인 북-미 대화의 재개를 위한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장관은 뉴욕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을 상대로 공동 브리핑에 나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북제재의 유지 등 일치된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실장과 강 장관의 방미 외교는 사실상 멈춘 북-미 비핵화 협상을 재개토록 유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지만 지금의 답답한 국면을 타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이달 초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이후 북-미 간 공식 대화채널은 실종 상태다.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한 북한군과 유엔군사령부 간 대화만 유지되고 있다. 이미 대화는 좌초했는데도 무늬만의 대화가 연출되고 있다는 의구심마저 높아가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3차 방북 때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폐기할 핵무기 목록과 비핵화 시간표, 미사일 시험장 폐쇄 등 3가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은 안전보장이 선행돼야 한다며 6·25 종전선언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막후에선 잘되고 있다”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정작 보좌진 회의에선 후속 협상에 진전이 전혀 없는 점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도 나왔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북-미 교착의 돌파구를 찾는 우리 정부의 중재 외교가 의외의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중재의 지렛대가 자칫 남북관계의 과속이나 대북제재의 이완을 낳는 것이어선 안 된다. 북-미 간 협상은 어디까지나 비핵화와 안전보장 교환이지, 대북제재까지 허무는 것은 아니다. 비핵화를 압박하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인 대북제재는 국제사회의 만장일치로 결의됐고, 그 해제도 비핵화 조치 이후 국제사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