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도쿄 특파원
그런 그가 최근 일본 국회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20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최장시간 연설을 한 것이다. 국회의원들과 TV 카메라 앞에 서서 그가 연설한 시간은 총 2시간 43분. 5월 같은 당 소속 니시무라 지나미(西村智奈美) 의원이 세운 2시간 6분 기록을 두 달 만에 갈아 치웠다.
에다노 대표는 이날 오전 국민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과 함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 대한 내각 불신임 결의안을 내고, 아베 총리가 추진하고 있던 카지노 등 통합형 리조트(IR) 실시 법안 표결을 늦추겠다며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했다. 관광객 유치 및 경제 성장 등을 주장하는 아베 정부에 맞서 야당 및 반대파는 도박 중독과 돈세탁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민당과 공명당, 거대 여당이 집권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의 내각 불신임 결의안, 에다노 대표의 필리버스터는 애초부터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불가능해 보였다. “중요 법안은 여당이 숫자로 압도해 버린다”며 “국회에서 다수를 잡으면 도리도, 도의도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는 마타이치 세이지(又市征治) 사민당 간사장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거대 여당이 숫자로 ‘밀어버린 것’은 법안뿐이 아니었다. 이번 정기국회 내내 아베 총리의 발목을 잡았던 모리토모, 가케 학원 등 사학 비리와 관련한 의혹은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됐다. ‘1강(强) 정치’의 상황에서 질주하는 아베 권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인다. 야당이 뭘 해도 실패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렇게 실패할 줄 알면서 뭐라도 바꿔 보기 위해 매주 국회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다. 3년째 ‘아베 정치를 용서하지 않아’란 구호를 담은 포스터를 들고 집회를 열고 있는 여성 작가 사와치 히사에(澤地久枝) 씨는 “아베 총리는 귀를 닫고 있고 오히려 (일본의 정치 상황이) 더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주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담고자 만든 것이 포스터 집회”라며 “더한 암흑기를 맞이하기 전에 후세를 위해 일본 정치, 사회를 바꿔야 할 의무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야당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더 필리버스터에 쓰고, 개혁적 시민들의 포스터 시위가 얼마나 더 많이 열려야 일본의 ‘1강 정치’가 긴장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될까.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