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백혈병 분쟁 중재안 수용]
22일 농성 1020일째를 맞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천막 농성장. 반올림은 2015년 10월 삼성전자의 일부 피해자에 대한 자체 보상을 반대하며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제 분쟁은 실익이 없다는 현실적 판단과 함께 새로운 방식의 사회 공헌을 고심해온 삼성이 대승적 결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에서는 보상, 사과 방식의 ‘백지 위임’에 따른 부담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가 이를 수용한 것을 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최고위층의 과감한 결단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 10월 안에 삼성 백혈병 분쟁 타결
24일 삼성전자와 반올림, 조정위원회가 중재 방식 합의서에 서명하면 조정위원회는 중재안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중재안이 시행되는 날부터 적용할 새로운 질병 보상안과 이를 위한 제3의 보상위원회 설치, 반올림에 속한 피해자에 대한 보상안 등을 담은 중재안을 9월 말∼10월 초에 내놓을 예정이다. 보상 범위는 물론이고 보상 금액도 조정위원회가 독자적으로 결정한다. 중재안에는 삼성전자의 사과 방안, 반도체 공정의 작업환경 관리와 개선책, 하청업체 안전보건 관리 지원 방안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반올림 쪽에는 2015년 10월부터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이어온 ‘천막농성’을 중단해 달라는 요청이 포함될 예정이다.
중재안이 나오고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여기에 서명을 하는 순간 분쟁은 완전히 끝나게 된다. 중재 방식에 동의해놓고 향후 중재안을 거부할 경우 파국에 대한 사회적인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양쪽이 이를 따르지 않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에선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동종 업계에서 시행한 보상 방안과 유사한 중재안이 마련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2016년 1월, LG디스플레이는 2017년 7월 각각 제3의 기구 형태인 ‘산업보건 지원보상위원회’를 꾸려 직업병 관련 질환에 대한 보상을 실시하고 있다.
○ ‘해묵은 논란 끝내자’ 결단
발병 원인과 책임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반올림 간 사과와 보상, 예방대책을 둘러싸고 기나긴 싸움이 벌어졌다. 보상안에 이견을 보인 일부 피해자 가족이 반올림과 분리된 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를 만들어 삼성전자의 자체 보상안을 수용하면서 보상이 시작됐지만 반올림과는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조정위원회의 중재 방식은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른다. 향후 조정위원회가 어떤 중재안을 내놓더라도 이에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모두 같은 상황이지만 ‘내주는 쪽’인 삼성전자가 훨씬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를 수용한 데는 삼성의 ‘국민적 신뢰’ 회복을 급선무로 여기는 이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적 비난이나 반도체 라인 공개 논란으로 사태가 번진 점을 감안하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서둘러 끝내는 것이 낫다는 실리적 판단을 했을 가능성도 크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에게 10년 넘게 끌어온 반도체 백혈병 문제는 조속히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라며 “강제 조정이 현재로선 복잡하게 얽힌 이 문제를 풀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태호 taeho@donga.com·신동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