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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재 교수의 지도 읽어주는 여자]영국의 아이스크림 사랑, 英 연방국들에 고루 퍼져

입력 | 2018-07-23 03:00:00

<23> 아이스크림의 지리학




아이스크림은 영국, 아일랜드에서 행복한 여름휴가를 상징한다. 동아일보DB

햇볕이 뜨거운 여름, 영국의 휴양지에는 아이스크림 밴이 출동한다. 콘월 데번 켄트 서식스 등 남부지역은 현지 목장 우유를 사용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부드럽고 진한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는 ‘아이스크림 벨트’로 유명하다. 영국이 지배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 아이스크림은 향수를 달래는 디저트로 각광받았다. 영국에 설탕을 공급하던 카리브해 연안의 자메이카도 아이스크림의 역사가 오래됐다.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아이스크림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다. 깨끗한 자연에서 자란 젖소가 생산한 신선한 우유에 키위 딸기 살구 블루베리 등 제철 과일이 더해져 풍성한 아이스크림 향미를 자랑한다. 1769년 영국인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첫발을 디딘 뉴질랜드 북섬 동부해안의 기즈번, 아르 데코 양식의 건물이 아름다운 항구도시 네이피어 등 영국계 이주민이 정착한 곳마다 아이스크림 가게가 생겼다. 설탕 생산량이 많은 호주도 아이스크림 소비량 세계 3위를 차지한다.

미국에서 아이스크림은 애플파이와 함께 국민 디저트로 꼽힌다. 토머스 제퍼슨, 조지 워싱턴은 아이스크림 마니아였다. 더 많은 국민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는 것을 진보의 지표로 삼았던 미국은 19세기 중반 이후 아이스크림 제조 기술의 혁신과 세계화를 선도했다. 음주운전을 예방하기 위해 술 대신 디저트로 마무리하는 외식 문화도 장려됐다. 고향의 맛이 담긴 아이스크림을 길거리에서 팔던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들도 아이스크림 문화 확산에 기여했다. 유럽풍 고급 수제 아이스크림을 선호하는 미국 소비자의 취향을 겨냥해 뫼벤픽, 하겐다즈 등 글로벌 아이스크림 기업들은 유럽 지도와 자연경관이 담긴 광고를 내보냈다.

이탈리아는 전통적인 아이스크림 강국이다. 소르베토의 고향으로 알려진 나폴리를 비롯해 시칠리아 출신 요리사가 문을 연 파리의 ‘르 프로코프’ 카페는 아이스크림 혁신의 중심지였다. 유지방이 적어 몸매에 신경을 쓰는 여성들에게 젤라토가 큰 사랑을 받자 볼로냐에는 제조법을 전수하는 대학까지 생겼다.

아이스크림 소비량이 많은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는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고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다. 아이슬란드에서는 해안도로를 달리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데이트 코스가 인기다. 백야를 견뎌야 하는 북유럽인에게 아이스크림은 행복감을 높이고 불면증과 자살 충동을 줄이는 항우울제 같다.

스웨덴 출신 유명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은 체리 아이스크림에 푹 빠져 급격하게 늘어난 체중 때문에 매니저가 걱정할 정도였다. 피카소는 ‘밀짚모자를 쓰고 아이스크림콘을 먹는 남자’를 그렸고, 앤디 워홀도 아이스크림을 소재로 작품을 남겼다. 아이스크림의 유혹에 넘어간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고백했다. “아이스크림 먹는 쾌락을 법으로 금지하지 않아 다행이다.”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