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위의 두 수학자가 공통적으로 관심을 보인 분야는 바로 ‘기하학’이다. 기하학은 수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분야다. 만물은 모양을 갖추고 있고, 그 모양을 감싸는 공간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하학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를 뿔나게 했다. 2022년 수능에서 수학·과학의 출제 범위를 축소한다는 교육부의 개편안 때문이다.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약학, 의학 등 과학 관련 학회와 단체들은 현재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핵심은 ‘기하’와 ‘과학II’를 수능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목들이 빠지면 이공계의 기초학력이 저하되고 교육기회가 박탈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이 때문에 교육부와 과학기술계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2018년 제59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우리나라가 종합 7위를 달성했다. 지난해 종합 1위에 비해 6계단 하락한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순위가 상승해 오다가 갑자기 여러 계단 하락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성적을 대학 입시에 쓸 수 없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래서 과학고 학생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고민해보면 과연 수학의 위상이 한국에서 어떤지 알 수 있다. 수학은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이 되었을 뿐 목적 자체가 아니다. 수학적 사고가 잉태하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문화가 아니라 계산적이고 기계적인 답습만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때문인지 한국은 아직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학력 저하의 문제는 ‘기하’와 ‘과학II’의 포함 여부나 국제 대회 성적의 입시 반영에만 있는 게 아니다. 더욱 심각한 건 교육과 평가의 방식에 있다.
인구의 약 20%가 수학 불안을 느낀다. 수학을 못해서 불안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평가와 교사들의 방식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는 것이다. 당황하면 사고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수학을 잘한다는 건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하고 논리적으로 풀어 헤쳐 나간다는 뜻이다. 단순히 정답을 잘 찾는다고 좋은 수학자가 될 순 없다. 그렇다면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평가 역시 유연해져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처음 언급한 세계경제포럼은 앞으로 필요한 능력 1순위로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을 꼽는다. 그 다음이 창의성이나 협업 능력, 감성 지능, 비판적 사고, 판단력, 유연성 등이다.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의 근간은 바로 수학(數學)의 힘이다.
최근 한 교육 주간지를 보면서 실기시험 없이 체대를 간다는 제목에 눈을 의심했다. 처음엔 의아했으나 ‘와이 낫?(왜 안 되지?)’이라는 물음이 생겼다. 요샌 미대도 실기시험 없이 입학이 가능하다. 물론 모든 전형이 실기가 없는 건 아니다. 학원에서 배운 기능적 실기만으로 미대나 체대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대학은 탁월한 학습 능력을 보인 학생의 예체능적 가능성을 살핀 것이다. 학생의 평상시 관심과 노력의 흔적은 필수다. 미대나 체대에서도 수학·과학적 능력이 매우 중요시된다. 그래서 대학은 전략적으로 내신과 수능 성적에서 등급 컷이 높은 학생들을 선호한다. 현대의 스포츠는 이미 수학·과학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교육정책의 혼선과 잦은 변화, 나쁜 평가 방식 때문에 학생들은 어떤 수학·과학을 공부해야 할지조차 막막하다. 수학 불안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김재호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