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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군사독재 시절에서 시계 멈춘 시대착오적 계엄 문건

입력 | 2018-07-25 00:00:00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 합수단,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을 집중검거 후 사법처리.’ 국군기무사령부가 작년 3월 촛불집회 당시 작성한 계엄 검토 세부문건에 담긴 내용이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할 경우 이를 무산시킬 방안으로 국회의원을 현행범으로 대거 체포해 국회 표결을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23일 오후 늦게 공개한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이처럼 대한민국이 과거 30, 40년 전 군사정부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의 계엄 해제 시도를 막기 위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원천 차단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그게 어려우면 국회의원들을 집회·시위 금지와 반정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 위반으로 대거 검거해 의결 정족수를 못 채우도록 한다는 초헌법적 발상이다.

우리 헌법은 계엄 해제와 관련해 ‘국회가 재적 과반 찬성으로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며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사실상 유일한 견제수단으로 남겨뒀다. 그런데도 기무사 문건은 입법부의 헌법적 권한까지 위협하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군사 2급비밀’ 문서에 포함시켰다.

이 밖에도 단순한 비상사태 대비를 넘어선 쿠데타 모의가 아니냐고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조치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계엄 선포 전 언론보도 등 보안 누설을 극히 경계하며 ‘2016년 7월 터키 계엄 시 시민 저항으로 계엄군 진입 실패’ 사례를 적시하는가 하면 국방부 장관이 주한 미국대사를 초청해 미 본국에 계엄 시행을 인정토록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과거 우리 군의 부끄러운 역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기무사 문건이 과연 실행 계획이었는지, 아니면 단순 검토였는지에 대해선 앞으로 군검 합동수사기구를 통해 밝혀질 것인 만큼 그 결과를 예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드러난 문건 내용은 우리 군, 아니 최소한 문건 관련자들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한심한 인식 수준에 멈춰서 있음을 보여준다. 기무사 문건 수사와는 별개로 우리 군의 정치적 중립과 문민통제 원칙 확립을 위한 전반적인 군 의식 개혁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