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제가 오래전부터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데 바로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레킹하는 것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 소원을 꼭 들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제가 퇴임하면 백두산과 개마고원 여행권 한 장을 보내주겠습니까.”
그러자 김정은은 엉뚱한 답을 한다.
“오늘 내가 걸어서 온 여기 판문점 분리선 구역의 비좁은 길을 온 겨레가 활보하며 쉽게 오갈 수 있는 대통로로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김정은은 돌아가서 트레킹이 뭔지 찾아봤을 것이다. 이달 그의 삼지연 방문을 보며 그랬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정은은 삼지연에서 관광구획 건설과 함께 예전과 달리 특별히 생태환경 보전을 강조했다. “산림을 파괴하는 현상이 나타나면 안 된다. 봇나무를 많이 심으라”고 구체적인 지시까지 했다. 어쩌면 김정은은 “남조선 대통령까지 백두산과 개마고원에 오고 싶어 한다니, 여길 원산 관광지와 엮어서 결합하면 좋은 관광 코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개마고원은 트레킹, 산악자전거, 산악자동차 대회 등을 유치해 전 세계 관광객을 모을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하지만 대북 제재가 풀려야 가능한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난 이후 김정은은 모두 세 차례의 현지 시찰을 했다. 간 곳들을 보면 콩밭에 가 있는 김정은의 마음이 읽힌다.
또 다른 방문지 삼지연은 백두산을 끼고 있어 향후 원산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그가 일주일 전에 세 번째로 방문한 청진과 어랑은 모두 북한이 지정한 경제개발구다. 김정은은 유명한 주을온천과 염분진해수욕장의 호텔 건설장에도 들렀다.
김정은이 시찰한 세 곳은 북한이 지정한 25곳의 경제특구 중에서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들이다. 김정은의 시찰은 현지 요해(파악)와 군기 잡기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 그는 “과연 여길 열어도 될지, 환경과 분위기는 어떨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봐야겠다”는 속셈이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한 그의 구상은 이뤄질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협상 부진으로 화를 낸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사실 더 조급한 것은 김정은일 것이다. 미국인 인질도 보내고, 핵실험장과 미사일 발사장을 없애고, 미군 유골도 곧 보내기로 했지만 미국은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 없다. 체제 안전 보장이나 제재 해제, 경제 지원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언제 얻을지 기약도 없다.
정상회담 결과들을 북한 내부에 최근 몇 달간 선전한 이상 김정은도 인민에게 보여줄 실질적 성과가 시급하다. 지금 북-중 국경에서 밀거래가 다시 활발해진다고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돈줄인 광물·수산물 수출과 의류 임가공에 대한 제재를 풀지 못하면 북한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시간은 트럼프의 편도 아니지만 김정은의 편은 더욱 아니다.
마음은 이미 제재를 푼 이후에 가 있지만 미국 말만 믿고 전 재산인 핵을 선뜻 내놓기 두려운 것이 김정은의 현재 심정 아닐까. 열대야로 푹푹 찌는 지금, 김정은은 평소 여름마다 애용하던 원산 별장에 머무르고 있을 것 같다. 어디에 있든 몸과 마음이 참 덥고 답답할 듯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