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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의 재발견]〈65〉못이 ‘박이면’ 불편, ‘박히면’ 큰일

입력 | 2018-07-25 03:00:00


● 손바닥에 못이 박혔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이 문장이 쓰인 상황을 상상해 보자. 아주 심각하다. ‘손바닥에 못이 박혔다’는 말 그대로 ‘못이 손바닥에 박혔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장이 이상하지 않다. 아래 문장의 뜻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손바닥에 못이 박이다.

여기서 ‘못’은 진짜 못이 아니다. ‘못이 박이다’ 자체가 ‘굳은살이 생기다’의 의미다. 규범적으로 ‘박이다’와 ‘박히다’는 제대로 구분해 써야 한다는 의미다. 그 구분을 위해 ‘박다’와 ‘박히다’의 관계부터 보자.

● 벽에 못을 박다. 
● 쐐기를 박다.

‘박다’의 가장 일반적인 의미가 반영된 것들이다. 이 ‘박다’에 ‘-히-가 든 단어가 ‘박히다’다. 국어 단어에 ‘-히-’가 들어가면 아래와 같이 의미가 달라진다.

① 먹다: 먹히다 → 먹음을 당하다(피동)
② 입다: 입히다 → 입도록 시키다(사동)


‘-히-’는 ①처럼 ‘당함’의 의미를 만들기도 하고 ②처럼 ‘시킴’의 의미를 만들기도 한다. ‘박히다’의 ‘-히-’가 ①이라는 것은 아래 문장으로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 벽에 박힌 못이 너무 많다. 빼자.

못의 입장에서 보면 망치에 의해 박음을 당한 것이다. ‘박이다’는 좀 다르다. ‘손바닥에 박힌 못’은 뺄 수 있지만 ‘손바닥에 박인 못’은 빼내기가 쉽지 않다. 어원적으로 연관될 가능성은 높지만 별개의 단어로 취급할 만큼 멀어졌다.

그럼 아래 문장에서어떤 것이 올바른 표기일까?

● 귀에 못이 박히다.(○)
● 귀에 못이 박이다.(×)

여기서 ‘못’은 굳은살은 아니다. 그렇다고 귀에 못이 진짜 박히는 것도 아니다.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국어학자들의 해석도 복잡하다. 어떤 사전에서는 ‘귀에 박히다’로, 어떤 사전에서는 ‘귀에 박이다’로 표기되어 있다. 우리가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언어는 계속 변한다. 규범을 결정하는 순간이 그 변화의 중간인 경우도 많다. 이럴 때는 어떤 것이 더 자연스러운지를 선택해야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선택은 ‘귀에 박히다’다. 왜 그럴까? 우리의 발음 때문이다. ‘귀에 못이 박혔다’를 빠르게 발음해 보자. 우리는 [바켰다]처럼 ‘ㅋ’을 소리 낸다. [박였다(×)]라 발음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의 우리는 ‘ㅋ’ 소리를 내는 경우가 월등히 많다. 이를 반영한 것이 ‘귀에 못이 박히다’다. ‘귀에 못이 박히다’를 비유적 의미의 관용구로 생각하고 이를 규범으로 정한 것이다.

여기서 또 화가 나야 한다. ‘손에 못이 박였다’도 [바켰다]로 소리 내질 않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소리 내는 사람이 많으니까. 하지만 이 경우에는 ‘못이 박였다’라는 단어가 갖는 ‘굳은살이 생김’이라는 의미가 분명하다. 어떤 학자는 ‘손에 박힌 못’과 실제 못의 의미 차이가 크다고 보기도 한다. 그 분명한 의미 차이가 원어에서 멀어졌음을 보이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