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chiffonade) 운영자
둘이 먹어도 넉넉할 만큼 큼지막한 유리그릇. 이가 시리도록 서걱서걱 씹히는 얼음을 갈아 얹고. 달달하게 삶은 팥과 부드러운 연유를 끼얹은 뒤, 미숫가루를 소복하게 뿌리고 알록달록한 젤리도 올리고. 화룡점정의 칵테일 체리로 장식한 빙수 한 그릇.
아마도 일생 통틀어 빙수를 제일 많이 그리고 제일 맛있게 먹었던 때인 듯하다. 교실에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없던 시절. 한여름 하굣길에 사먹는 빙수는 꿀맛일 수밖에. 수레바퀴 돌리듯 핸들을 움직여 얼음을 갈아 빙질은 거칠었고 인공색소로 빛깔을 낸 젤리 같은 조악한 토핑을 인심 좋게 잔뜩 얹어주었다. 열대과일이 비싼 시절이라 병문안할 때 인기를 끌던 과일칵테일 통조림이나 연유가 올라가면 고급빙수로 취급하던 시절이다.
전통빙수와는 아예 다른 취향을 저격한 새로운 빙수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망고나 멜론 등 열대과일을 주재료로 갖은 토핑을 골라서 얹을 수 있는 빙수, 서양식 디저트 메뉴를 응용한 캐러멜 빙수와 프랑스식 밤 절임 ‘마롱글라세’ 맛의 몽블랑 빙수, 진한 초콜릿 음료를 얼려 특화시킨 초콜릿 빙수, 녹차나 각종 과일시럽을 이용한 일본식 빙수까지. 골라먹는 재미가 크다.
올여름은 교복 입고 빙수 먹던 그 옛날과 비교도 안 될 찜통더위다. 왠지 이런 더위는 조상의 지혜, 이열치열로 다스리긴 어려울 듯하다. 빙수라도 먹으며 내장까지 뜨거워진 열을 내려줘야겠다.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chiffonade) 운영자 chiffonade@naver.com
○ 밀탑: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429(현대백화점 압구정점), 밀크 팥빙수(사진) 9000원
○ 동빙고: 서울 용산구 이촌동 301-162, 빙수 7000원
○ 17도씨: 서울 마포구 동교로29길 38, 초콜릿 빙수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