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바람, 새싹, 꽃, 단풍 등 주변의 자연을 소재로 삼고 있다. 대낮에 뜬 달을 보며 지난 밤 화려한 무대에 올랐던 ‘프리마돈나’를 떠올린다(‘낮달’). 짙은 어둠의 장막 안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누구보다 우아하고 매혹적이었지만 모든 것을 불태우고 아침을 맞은 ‘민낯’을 보며 저자는 안쓰러워한다.
서울대와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동아일보에서 기자, 논설위원을 지낸 저자의 과거 소회를 담은 시들도 눈에 띈다. ‘그저 세월이라고?’는 다시는 데모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보증을 서준 선생님을 비롯해 형사, 학교 동기 등 학생 운동하던 시절 남산으로 끌려가 만났던 얼굴에 대한 기억의 조각을 모은 시다. 도시에 와 술을 먹고 기억을 잃었던 때를 노래한 ‘처음 필름 끊긴 날’은 재기 발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