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조 스님의 단식장에 붙어 있는 오송선원(五松禪院) 표지. 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몇 시간 뒤 조계종 홍보국은 입장문을 통해 “5월 전모 씨가 설정 스님의 친자가 아니라는 내용의 김 씨 영상증언을 공개한 바 있다”며 “당사자가 스스로 허위라고 밝힌 내용을 새로운 것처럼 이제야 공개해 혼란을 부추기는 도현 스님과 그 배후 세력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했다.
조계종의 여름은 폭염보다 뜨겁다. 총무원 청사 지척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설조 스님의 단식은 종단 갈등의 아슬아슬한 외줄이다.
오랫동안 학승(學僧)으로 살아온 A 스님은 종단 현안에 대한 지혜를 구하자 “희망이 없다. 정치에 관심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여기서 정치는 총무원 청사가 있는 견지동 45번지(현재 우정국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른바 ‘종단 정치’다. 여의도 정치권보다 높은 공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돌 정도로 종단 정치의 셈법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설정 총무원장과 설조 스님의 외줄처럼 보이는 조계종의 위기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그 뿌리를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에 앞서 조계종은 2009년 자승 스님이 총무원장으로 당선된 뒤 두 차례 사회적 지탄을 받으며 위기에 몰렸다.
1차는 직영 사찰 전환을 둘러싼 봉은사 사태, 2차는 2012년 충격적인 동영상으로 공분을 샀던 백양사 도박사건이다. 2010년 봉은사 사태는 정권 압력설에 이어 종단 수뇌부의 룸살롱 출입 논란으로 비화되면서 큰 도덕적 상처를 남겼다. 한때 밀월 관계로 알려졌던 자승, 명진 스님의 관계도 결딴났다. 개혁적 색채와 수행승의 면모로 신망을 샀던 명진 스님 역시 이 사건을 계기로 종단 내부의 민심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백양사 도박사건은 수행 종단을 표방해온 조계종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파장이 더 컸다. 자승 원장은 108배 참회와 함께 “투명한 종단 운영을 위해 종책(계파 모임)을 해산하겠다”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까지 밝혔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국회 격인 중앙종회의 80% 이상을 장악한 계파 모임을 앞세워 2013년 연임에 성공했고, 지난해 10월 수덕사 방장이던 설정 스님을 총무원장에 당선시켰다.
1994년 종단 개혁으로 정당성을 지녔던 종단의 틀이 낡은 옷이 됐고, 개혁을 주도했던 그룹 역시 퇴진을 요구받는 처지가 됐다. 조계종의 개혁은 좌우 이념 논쟁이 아니다.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부처님 법을 시대에 맞게 제대로 구현하면 된다.
종단 정치의 산실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종회 중심에서 총무원장 선출을 포함한 주요 권한이 승가공동체에 넘겨져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비구와 비구니, 출가자와 재가자의 관계도 시대에 맞게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말과 왕래를 모두 끊어 죄를 지은 자가 스스로 부끄러움과 참회를 느끼도록 한다는 묵빈대처(默擯對處)의 심경이라는 한 스님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