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김갑식]山門을 나온 수좌들

입력 | 2018-07-28 03:00:00


수좌(首座)는 사찰을 비롯한 종단의 행정과 포교 등을 책임지는 사판승(事判僧)과 달리 참선을 위주로 수행하는 선승(禪僧)을 가리킨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을 지낸 효봉, 법전 스님의 별명이 ‘절구통 수좌’였다. 한번 참선에 들어가면 꼼짝하지 않고 용맹정진해서 붙여진 별호다. 역시 종정을 지낸 성철 스님은 후학들의 참선 수행에 누구보다 엄격해 거침없이 장군 죽비를 내리는 ‘가야산 호랑이’였다.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의 선원장급 수좌 20여 명이 27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참회의 108배를 올렸다. 수좌들이 산사에서 집중 수행해야 하는 하안거(夏安居) 시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조계종에 폭행과 도박, 은처자(隱妻子), 절도, 성폭력, 공금 횡령, 룸살롱 출입 등 일반 사람들조차 입에 담기 어려운 범계(犯戒)와 범죄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는 게 이들이 산문(山門)을 박차고 나온 이유다.

▷지금 조계종은 누란의 위기다. 1994년 종단 개혁에 참여했던 원로 설조 스님은 설정 총무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하고 있다. 오늘로 39일째다. 자승 전 총무원장의 도움으로 종단 수장에 오른 설정 스님은 지난해 선거 때부터 은처자 시비에 휩싸였다. 설정 원장의 자녀를 출산했다고 주장하는 김모 씨의 20여 년 전 녹취록과 이를 부인하는 동영상도 공개됐다. 자승 전 원장이 자신에게 유리한 종권(宗權) 재창출을 위해 그런 허물에도 불구하고 설정 스님을 선택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수좌들은 참회의 108배가 전국승려대회 개최로 이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수좌들의 목소리는 조계종이 격변기를 맞을 때마다 전환점을 만들었다. 종단의 실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도 이들의 집단행동이다. 대표적인 승려대회는 1987년 9·7 해인사 승려대회와 1994년 4·10 조계사 승려대회다. 해인사 대회는 불교 자주화의 계기가 됐고, 조계사 대회는 서의현 당시 총무원장의 3선을 막아 종단 개혁의 분수령이 됐다고 평가받는다. 진리를 위해서는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님과 조사(祖師)도 죽인다는 게 수좌들의 세계다.

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