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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무어 허쉬 기자(오른쪽).
지난달 15일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르네상스호텔에서 열린 ‘2018 미국탐사보도협회(IRE) 컨퍼런스’ 현장. 갈색 니트를 입은 한 노기자(老記者)가 전 세계에서 온 탐사보도 기자 200여 명을 앞에 두고 웃으면서 말했다. 강연장에 모인 기자들은 웃으면서도 눈빛을 반짝였다. 이날 강연의 주인공은 ‘펜으로 미군의 베트남 철군을 이끌어냈다’고 평가받는 세이무어 허쉬(Seymour Hersh) 전 뉴욕타임스(NYT) 기자였다.
허쉬 기자는 1968년 미군이 베트남 남부 미라이 마을에서 주민 500 여명을 대량 학살한 사건의 실체를 특종 보도했다. 그의 기사로 베트남 전의 참혹한 실상이 밝혀지면서 미국 내 반전(反戰) 여론이 고취됐고 결국 미군 철수로 이어졌다. 허쉬 기자는 이 강연회 사회를 본 NYT 후배 맷 아푸조(Matt Apuzzo) 기자의 질문에 당시 취재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당시 학살을 주도한 혐의를 받던 윌리엄 캘리 소위의 변호사를 찾아가 ‘허풍’을 친 이야기도 털어놨다. 그는 군사법원 판사 출신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기자인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대뜸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변호사가 “아는 게 뭐냐?”라고 물었다. 그가 “만나서 직접 말하겠다. 그다지 좋은 얘기는 아니다”라고 답하며 만남이 이뤄졌다.
하지만 캘리 소위에게 불리한 사실을 그의 변호사가 확인해 줄 리 만무했다. 허쉬 기자는 머리를 썼다. 당시 미라이 마을의 사망자를 75명으로 알고 있었지만 변호사를 만나서는 “150명이 죽은 걸로 안다”고 부풀린 것이다. 적대적 취재원을 자극해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취재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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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쉬 기자는 20분 동안 서류가 놓인 책상을 사이에 두고 변호사와 인터뷰하는 동시에 거꾸로 놓인 서류를 눈으로 읽으며 종이에 받아썼다고 했다. 그가 서류의 내용을 받아 적고 있다는 걸 변호사가 눈치 채지 못하게 계속 말을 걸었다. 허쉬 기자는 “캘리 소위의 변호사가 그 서류를 복사해줄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그 문서가 내 앞에 놓여져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고 말했다. 당시 미 국방부는 그의 보도를 전면 부인했지만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올해 81세인 허쉬 기자는 여전히 현역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최근에도 미군의 오사마 빈 라덴 암살 작전에 대한 의혹 보도, 시리아 내전의 현실에 대한 보도 등 손자뻘 되는 후배들을 긴장시키는 기사를 잇따라 쓰고 있다. 그는 “지금 이 시각에도 미군은 전쟁에 참전하고 있다”며 “내전이 진행 중인 예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더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KPF 디플로마-탐사보도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올랜도=조동주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