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1층 로비에서 직원들이 걸어가고 있다. 폭염이 계속되면서 관공서와 기업 등은 이른바 ‘쿨비즈’를 강조하고 있지만 반바지를 입은 남성 직장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2. 서울 최고기온이 36.8도까지 올라갔던 24일 낮 12시. 점심시간을 맞아 서울시청 1층 로비로 쏟아져 나오는 남자 직원들을 살펴봤다. 상의는 반팔 티셔츠를 입은 직원이 많았지만 바지만큼은 정장바지, 면바지, 청바지 모두 긴바지 일색이었다. 반바지 차림의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이따금 발목을 살짝 드러낸 9부 바지 정도가 눈에 띄는 노출이었다. 서울시 공무원 A 씨(43)는 “아무도 반바지를 안 입으니 나도 안 입는 것 뿐”이라며 “상사들이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하면 따라 입을 생각은 있다”고 말했다.
●유독 반바지만 안 되는 쿨비즈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이 직접 반바지를 입고 패션쇼에 오르는 등 슈퍼 쿨비즈를 정착시키기 위해 애를 썼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에서 나름 노력을 하는데 남자 직원들이 반바지만큼은 정말 잘 안 입는다”고 말했다.
다른 관공서와 기업에서도 남성 직원들은 ‘긴바지옥(긴바지+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바지를 입으면 예의에 어긋나고 격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아무리 더워도 긴바지를 고수하는 것이다. 여성 직원들이 짧은 반바지나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샌들을 신는 것과 대비된다.
●“긴바지옥” vs “반바지는 속옷차림”
반바지 차림을 허용하는 슈퍼 쿨비즈가 정착하지 못하는 건 반바지에 대한 세대별 인식차가 극심한 탓이 크다. 실용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는 ‘반바지 입고 일 잘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반면 권위와 격식을 중시하는 기성세대는 반바지가 예절에 어긋난다고 여긴다.
2030세대는 불만이 많다. 서울 강남의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4년차 직원 이모 씨(30)는 “밖에 잠깐만 나가도 다리에 땀이 흐른다”며 “외근도 없는데 한여름에 긴바지를 입는 건 비효율”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50대 직장인들에게 반바지는 ‘회사에선 입을 수 없는 옷’이다. 디자인회사 대표 김모 씨(59)는 “반바지는 속옷처럼 느껴진다”며 “직책이 있는 만큼 속옷차림으로 회사에 가는 건 부담”이라고 말했다.
중간관리자 세대인 40대 직장인들은 ‘젊은 직원들의 요구는 알지만 윗선의 눈치가 보인다’며 양쪽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한 대기업 계열사 차장 송모 씨(43)는 “부하 직원들이 ‘옷 좀 편하게 입게 해 달라’고 말하는 게 이해되지만 우리도 윗선 눈치를 봐야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반바지 근무’라는 문화가 정착 과정에서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서로가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의류학과 남윤자 교수는 “아래 직급에 있는 다른 사람이 반바지를 입더라도 불편한 시선을 보내지 않고 서로의 복장을 존중해야 실용적인 쿨비즈 문화가 정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혜미 인턴기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