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 작가·철학박사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에게 관대하다. 단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잘못마저 예뻐 보인다. 문제는 이것이 치우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균형을 잃으면서 객관적인 시선을 방해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만든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친구가 좋은 조언을 해줬다고 가정해보자.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 조언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싫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넘겨버리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 사람이 가진 장점도 보려 하지 않는다.
위의 문장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좋고 싫어하는 감정 자체를 부정하라는 뜻은 아니다. 감정을 갖게 되고 그 감정의 영향을 받는 것, 자신의 기준에 따라 특정 대상에게 호불호의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극복하고 완벽히 객관적이며 공정한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학’의 저자 증자(曾子)가 말하듯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전제하는 것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 때문에 사람을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보통 자기가 속한 집단에 관대하다. 잘못이 있어도 덮어주고 오판을 내려도 합리화한다. 내부의 문제점들도 직시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대편 집단에는 엄격하다. 어떻게든 잘못을 끄집어내 확대 해석하고 장점이나 좋은 점은 외면한다. 그러다 보면 이쪽은 무조건 옳고 저쪽은 무조건 그르다는 도식이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양자의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이럴 때 만약 ‘좋아하면서도 나쁜 점을 살필 수 있고 미워하면서도 아름다운 점을 알 수 있다’면 어떨까. 최소한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김준태 작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