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31일 추가로 공개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문건 196건을 보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양승태 대법원이 실행계획을 세워 얼마나 집요하게 로비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날 공개한 문건에는 청와대, 법무부, 국회에 대한 대응전략과 관련 인사 면담 계획 및 접촉 후 보고, 반대하는 대한변협에 대한 압박 방안 등이 망라돼 있다.
전방위 로비를 시도한 정황들은 문건의 제목에서 드러난다. ‘BH(청와대)로부터의 상고법원 입법추진동력 확보방안 검토’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대국회 전략’ ‘법사위원 접촉일정 현황’ 등이다. ‘한명숙 판결 후 정국전망과 대응전략’ ‘대통령 하야 정국이 사법부에 미칠 영향’ 문건과 같이 정치적인 판단을 곁들인 문건은 마치 정보기관의 보고서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문건 중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 중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여야 국회의원 5명을 ‘키맨 5인방 관리’라고 표현하고 지역구 민원 해결 등을 통해 이들을 회유하려 시도한 내용도 있다. 특히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친분이 있는 법관을 통해 설득하거나 소송 중인 의원을 압박하는 방안,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법무부에 대해서는 구속영장 발부율을 높여 ‘최후의 충격요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을 정도다.
이 문건 외에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방대한 자료를 입수했다. 무엇이 더 나올지 알 수 없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에서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위안부 손배 판결 관련보고(대외비)’도 그중 하나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와 합의한 직후인 2016년 1월 초 작성된 이 문건은 재판 전 ‘각하’ 또는 ‘기각’으로 미리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재판은 2년 6개월 넘게 심리가 열리지 않고 있다.
상고법원 도입이 아무리 절박한 과제였다고 해도 한 나라의 최고법원답게 적법한 절차를 지켰어야 했다. 검찰 수사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치부가 속속 드러나 사법부의 신뢰 붕괴가 걱정될 정도다. 대법원은 검찰 수사에 협조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최대한 빨리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을 지켜야 할 법관들의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돼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가 무너지면 어느 국민이 재판 결과에 승복하겠는가.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위기를 극복할 방안 마련에도 고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