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여자부 구단들은 지난 13년간 학교지원금 명목으로 103억원을 지원했지만 기대했던 저변확대 등은 이루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이에 분배 왜곡 및 특정 학교 쏠림 현상을 바로 잡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사진은 2014∼2015 프로배구 여자 신인 드래프트 모습. 스포츠동아DB
분배 왜곡&특정 소수학교 쏠림으로 올바른 생태계 무너져
선수육성 대신 스카우트 통한 지원금 독식 시스템이 문제
선수수급 최하위단계인 초·중학교와 무명학교 지원 늘려야
2018년 프로배구 V리그 신인드래프트를 앞두고 여자부 6개 구단과 선수를 공급하는 여자고등학교 감독들의 신경전이 팽팽하다. 우수한 신인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황금세대의 출현으로 기대가 높은 상황에서 프로구단과 여고 감독들은 학교지원금 제도의 개선을 놓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프로구단을 대신해 한국배구연맹(KOVO)은 여고부 감독자협의회에 신인드래프트 일정 조정, 지명선수 학교지원금 비율 조정과 액수 축소 등의 개선안을 보냈다. 감독자협의회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돈 문제라 쉽게 양보하기도 힘들다.
● V리그 출범 이후 프로구단은 아마추어배구에 얼마나 투자했나?
KOVO는 이 가운데 여고에 지원하는 10%를 다른 목적으로 쓰려고 한다. 또 해당학교에 직접 지원하지 않고 대한배구협회 산하 중고연맹을 통해 지원금을 전달하는 간접 방식으로 바꿀 생각도 있다.
물론 여고부 감독들과 학교는 반발한다. 중고연맹을 통할 경우 돈이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여고부에만 쏠리는 지원금을 놓고 초·중학교의 불만도 컸다. 안정적인 선수수급 시스템의 기본은 피라미드구조다. 이를 위해서라도 올바른 지원금 분배와 선수층 최하위 단계인 초·중학교의 지원은 필요했다. 그래서 여고부의 반대에도 초·중학교의 지원비율을 조금씩 늘려 편중현상을 줄이려고 했다.
초·중·고간의 분배비율도 문제지만, 같은 여고팀들 내에서도 지원액의 편차가 큰 왜곡현상과 양극화가 발생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 쓸만한 선수는 드물고 구단이 투자하는 돈은 늘어만 가고…
프로구단들은 그동안 지원했던 자금의 효과를 통해 배구선수층이 넓어지고, 구단이 투자한 만큼의 좋은 선수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팀의 전력향상에 도움이 되는 신인들은 많지 않았다.
현행 규정상 1차지명의 경우 선수 연봉의 200%를 지원금으로 내놓는데, 지원금(최소 1억원)에 걸맞은 가치를 하는 선수는 몇 년에 하나였다. 어느 구단 사무국장은 “솔직히 3년에 한 명 정도 쓸만하고 나머지는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차지명은 연봉의 150%, 3차지명은 연봉의 100%를 지원금으로 줘야 한다. 올해부터는 몇 년째 묶였던 신인선수의 연봉도 500만원씩 올려줄 예정이다. 지원금은 해마다 늘어만 가는데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는 나오지 않자 프로구단들은 굳이 이런 방식으로 선수를 데려와야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한다.
그래서 지원금이 올바르게 분배되고, 배구를 하는 모든 학교가 골고루 혜택을 누리는 모범적인 생태계를 만들려고 한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기득권을 가진 학교와 감독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당분간 신인드래프트를 놓고 여고부 감독들과 학교, KOVO를 대표로 내세운 프로구단들의 힘겨루기는 팽팽할 것이다.
● 쉽지 않은 지원금 분배의 정의
지원금 분배를 보면 현 정부의 경제정책 딜레마와 많이 닮았다. 정부는 분배의 균형을 통해 모든 사람이 잘사는 사회를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정부에서 돈을 열심히 풀지만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다. V리그의 지원금도 비슷하다.
KOVO가 학교지원금을 분석한 결과 13년간 가장 많은 돈을 받은 학교는 수원전산여고(12억6782만5000원)였다. 2위와 3위는 진주 선명여고, 중앙여고였다<관련 표 참고>. 이들을 포함한 상위 10개교가 전체 지원금의 84.5%를 독식해왔다.
좋은 선수를 많이 배출하는 학교일수록 혜택도 많아야 하지만, 문제는 이 과정이 정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수를 자체적으로 육성하지 않고 학생배구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편법을 썼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다보니 전학과 스카우트라는 편법을 통해 인기학교만 배를 불렸다. 유명학교는 전국의 유망주를 미리 쓸어가고, 무명학교는 몇 년에 한 명 나온 유망주를 빼앗긴 채 선수마저 모자라 팀 해체를 고민한다. 특정 소수학교 중심의 시스템은 양극화를 초래했다. 지원금 쏠림현상은 많은 학교에 상대적 박탈감을 안겼다.
2014년 선명여고는 3억3250만원의 학교지원금을 받았다. 이재영~이다영~하혜진으로 신인드래프트 1~3위를 독차지한 덕분에 역대 단일시즌 최다액수의 지원금을 받아냈다. 2위는 2010년의 중앙여고, 3위는 2012년의 전주 근영여고다<관련 표 참고>. 학교로 보자면 그동안 정성들여 선수를 키운 것에 대한 보상이지만 다른 생각도 많다.
많은 선수들이 전학생이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립학교나 지원금을 많이 받은 학교는 일찍 유망주들을 싹쓸이한 뒤 신인드래프트에서 몇 배의 이익을 남겼다. 2019년 신인드래프트 최대어 정호영(선명여고)이 대표적 사례다. 광주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지만 팀을 옮겼다. 정호영을 놓친 광주체고는 한때 배구부를 해체하려고 했다. 아마추어배구에 도움을 주려고 만든 제도가 선수장사로 나쁘게 이용되면서 많은 학교들은 피해를 보고 있다.
프로구단들은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사무국장 워크숍을 열고 개선안을 마련했다. 우선은 3라운드 선수의 지원금을 없애고, 2019년부터는 전체 선수의 지원금도 줄이려고 한다. 또 쏠림현상을 막기 위해 특정학교가 받는 지원금의 상한선도 정해 프로선수를 배출하지 못한 학교와의 격차를 줄이고 싶어 한다. 1억원을 초과하는 지원금은 발전기금으로 만들고, 지원금의 투명한 회계처리를 위해 학교 대신 중고연맹을 거쳐 지원하는 방안도 원한다.
극히 일부 사례겠지만 지원금이 선수와 학교, 팀을 위해 올바르게 쓰이지 않고 특정인들의 배를 불려 문제가 된 적도 있었기에 이를 막을 방법도 찾고 있다. 모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반대하는 내용들이다. 그래서 개혁은 쉽지 않다. 신인드래프트와 관련한 올바른 생태계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하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