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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용]‘옥탑방 시장님’의 맨해튼 짝사랑

입력 | 2018-08-01 03:00:00


박용 뉴욕 특파원

국경이 희미해진 세계화 시대의 주인공은 도시다. 중세 유럽처럼 도시들이 자본과 인재를 차지하려고 치고받는 현실을 빗대 ‘신(新)중세시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살얼음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잘나가는 도시를 배우는 벤치마킹도 치열하다. 그래서 “통으로 여의도를 개발해 맨해튼에 버금가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싱가포르 발언’도 낯설게 들리진 않는다.

여의도를 미국 뉴욕 맨해튼과 연결짓는 상상력은 1980년대부터 나왔다. 새로운 게 아니다. 문제는 꿈을 현실로 만들 전략과 실행 방법이다. 맨해튼은 150개국 출신 사람들이 170개 언어를 쓰며 살아가는 국제도시이자 세계 경제 문화 수도 뉴욕의 엔진 격이다. 그런 맨해튼을 여의도에 이식시키는 건, 뉴욕 하이라인을 베껴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중 보행로로 바꾸는 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서민들의 삶을 느껴 보겠다며 9평 옥탑방까지 들어간 시장이 불쑥 “여의도가 서울의 맨해튼이 돼야 한다”고 큰소리부터 친 건 뜬금없었다. 돈 냄새를 동물적으로 맡는 부동산 업자의 엉덩이부터 들썩거린 건 당연하다. 박 시장은 “지역별로 주제별로 잘 정리하자는 얘기였는데, 갑자기 땅값이 오르고 난리가 났다”고 사실상 ‘남 탓’을 했다. 초짜도 아니고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인 그가 그런 반응이 나올 걸 몰랐을 리 없을 터다. 만약 알고도 그랬다면 무모하고 무책임하다.

서울의 박 시장이 맨해튼을 눈여겨보는 동안 뉴욕의 시장들은 오래전부터 서울도 경쟁 상대로 넣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코넬텍(코넬대 공대) 개소식에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뉴욕이 실리콘밸리부터 서울까지 전 세계의 기술 센터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코넬텍이 도울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3선 뉴욕시장(2002년 1월 1일∼2013년 12월 31일 재임)이었던 그가 금융업과 문화관광산업에 편중된 뉴욕을 정보기술(IT) 중심의 혁신경제로 다각화하기 위해 공대부터 지어야 한다고 팔을 걷고 나선 결실이 코넬텍이다.

그날 뉴욕에선 전·현직 시장과 주지사까지 총출동해 한목소리로 미래 비전을 얘기하고, 2043년까지 코넬텍 장기 투자 계획을 약속했다. 다른 도시를 벤치마킹할 거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이해관계자들과 비전을 공유하며, 꾸준히 장기간 밀어붙여야 한다는 걸 뉴욕이 보여줬다. 그들의 꿈처럼, 뉴욕은 요즘 미국에서 실리콘밸리 다음으로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1200억 원) 이상의 신생 기술기업)을 많이 만들어 낸다.

급성장하던 서울은 성장과 쇠퇴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인구는 줄고 20, 30대의 일자리는 감소하고, 결혼마저 줄었다. 15년 전 “서울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던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마저 물 건너간 상황에서 무엇으로 여의도를 맨해튼으로 바꾸겠다는 건가. 좁은 옥탑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어떤 맨해튼을 구상하고 있는지 박 시장이 시민들에게 답해야 한다. 말부터 앞세웠다면 개발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로 부동산 바람만 일으켰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옥탑방살이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더위도, 추위도 아니었다. 언제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막막함이었다. 박 시장이 ‘맨해튼 드림’을 포기하지 않겠다면 낡은 아파트단지를 베드타운 신도시로 바꾸는 부동산 개발이 아니라 미래가 막막한 서민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으로 희망을 돌려주는 일을 목표로 해야 한다. 박 시장이 옥탑방 더위 대신 서울에 펄떡펄떡 뛰는 새 심장과 엔진을 달아주는 꿈과 비전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는 말이 들리면 좋겠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