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뉴욕 특파원
여의도를 미국 뉴욕 맨해튼과 연결짓는 상상력은 1980년대부터 나왔다. 새로운 게 아니다. 문제는 꿈을 현실로 만들 전략과 실행 방법이다. 맨해튼은 150개국 출신 사람들이 170개 언어를 쓰며 살아가는 국제도시이자 세계 경제 문화 수도 뉴욕의 엔진 격이다. 그런 맨해튼을 여의도에 이식시키는 건, 뉴욕 하이라인을 베껴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중 보행로로 바꾸는 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서민들의 삶을 느껴 보겠다며 9평 옥탑방까지 들어간 시장이 불쑥 “여의도가 서울의 맨해튼이 돼야 한다”고 큰소리부터 친 건 뜬금없었다. 돈 냄새를 동물적으로 맡는 부동산 업자의 엉덩이부터 들썩거린 건 당연하다. 박 시장은 “지역별로 주제별로 잘 정리하자는 얘기였는데, 갑자기 땅값이 오르고 난리가 났다”고 사실상 ‘남 탓’을 했다. 초짜도 아니고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인 그가 그런 반응이 나올 걸 몰랐을 리 없을 터다. 만약 알고도 그랬다면 무모하고 무책임하다.
그날 뉴욕에선 전·현직 시장과 주지사까지 총출동해 한목소리로 미래 비전을 얘기하고, 2043년까지 코넬텍 장기 투자 계획을 약속했다. 다른 도시를 벤치마킹할 거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이해관계자들과 비전을 공유하며, 꾸준히 장기간 밀어붙여야 한다는 걸 뉴욕이 보여줬다. 그들의 꿈처럼, 뉴욕은 요즘 미국에서 실리콘밸리 다음으로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1200억 원) 이상의 신생 기술기업)을 많이 만들어 낸다.
급성장하던 서울은 성장과 쇠퇴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인구는 줄고 20, 30대의 일자리는 감소하고, 결혼마저 줄었다. 15년 전 “서울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던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마저 물 건너간 상황에서 무엇으로 여의도를 맨해튼으로 바꾸겠다는 건가. 좁은 옥탑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어떤 맨해튼을 구상하고 있는지 박 시장이 시민들에게 답해야 한다. 말부터 앞세웠다면 개발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로 부동산 바람만 일으켰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옥탑방살이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더위도, 추위도 아니었다. 언제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막막함이었다. 박 시장이 ‘맨해튼 드림’을 포기하지 않겠다면 낡은 아파트단지를 베드타운 신도시로 바꾸는 부동산 개발이 아니라 미래가 막막한 서민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으로 희망을 돌려주는 일을 목표로 해야 한다. 박 시장이 옥탑방 더위 대신 서울에 펄떡펄떡 뛰는 새 심장과 엔진을 달아주는 꿈과 비전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는 말이 들리면 좋겠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