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계엄문건 사태는 多層적… 문건만 아니라 프레임을 봐야 국방장관 큰 문제 없다고 본 문건 끊임없이 돌출시키려 한 기무사 장관과 진실 공방에서 이겼지만 危重 판단은 정권 구미 맞춘 듯
송평인 논설위원
기무사 계엄 문건 사태는 국방부 장관에 대한 기무사의 하극상이라고 표현된 사건을 통해 그 액자 구조가 뒤늦게 드러났다. 지금 국가의 각 조직은 어떻게든 적폐를 ‘발굴’해내야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여기는 듯하다. 기무사 근무는 처음인 이석구 사령관이 올 3월 기무사 계엄 문건에 대한 내부 제보를 받고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찾아가 ‘위중하다’고 보고를 했더니 그가 뭉개버렸고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자 치받았다는 것이 사태의 전모다.
위중하다는 말은 ‘군대스럽다’. ‘민간인’들은 병세가 위중하다는 말은 하지만 사안에 대해서는 심각하다고 하지 위중하다고는 잘 하지 않는다. 병세가 위중하다는 말은 환자가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때나 쓴다. 시리어스(serious)한 정도를 넘어 크리티컬(critical)하다는 의미에서 그런 말을 사용했다면 기무사 계엄 문건은 위중하지 않다.
기무사는 작은 흠도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보고하는 조직이다. 기무사의 눈으로 보면 위중하지 않은 게 없다. 남의 흠을 잡아내는 쪽은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예상외로 커졌을 때 면피할 수 있다고 여긴다. 기무사 사람들이 평소 위중하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고 다니니까 듣는 쪽은 그냥 흘려듣게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사령관의 ‘위중하다’는 판단은 정권의 구미에는 딱 맞았다. 기무사 개혁을 벼르고 있는 청와대는 하극상 이후 관심이 하극상에 쏠리자 문건 자체로 관심을 되돌리기 위해 애쓰면서도 하극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오히려 송 장관의 책임을 물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사령관은 문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사람이다. 기무사는 눈치가 9단인 조직이다.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군대는 비합리적일 정도의 상명하복(上命下服)이 다반사인 조직이다 보니 숨기는 것이 용이하고 실제 숨기는 것이 많다. 그걸 찾아내 군 기강을 확립하는 게 기무사의 기본 임무다. 그렇다 보니 하극상처럼 보일 때도 많다. 그럼에도 그 일을 할 수 있어야 방첩도 보안도 가능하다. 송 장관이 국방부 간담회에서 했다는 ‘계엄 문건 큰 문제 없다’는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를 부인하는 사실관계확인서를 간담회 참석자들에게 받아 은폐하려 한 국방부 아닌가. 일선 부대장이 숨기는 게 있으면 담당 기무부대장은 상급 지휘관이나 국방장관에게 알리고 국방장관이 숨기는 게 있으면 대통령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별도의 보고 라인이 있어야 최고 군 통수권자의 군 통제가 가능하다. 그래서 과거 기무사령관은 대통령을 독대하기도 했던 것이다.
기무사 계엄 문건은 기무사가 조직 보호를 위해 안간힘을 쓰다 돌출한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건을 둘러싼 국방부 장관과 기무사의 공방은 기무사의 존재 이유를 부각시켰다. 남의 기무사가 아니라 자기의 기무사라면 얘기는 달라지는 법이다. 군의 잠재적 쿠데타 가능성까지 제기하면서 심각하게 봤는데 군 감시를 안 한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그렇다고 기무사 축소를 하지 않으면 개혁이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기무사 본연의 업무인 방첩과 보안은 건성건성 하면서 군 감시만 하는 더 고약한 기무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