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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기홍]수술대 오르는 경찰대

입력 | 2018-08-01 03:00:00


고참 경찰관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떠도는 얘기다. 과거 순경 시험엔 ‘다음 중 동물원에 사는 동물이 아닌 것은?’이라고 묻고 ‘Bear’, ‘Tiger’ 등이 예시되는 문제도 등장했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 경찰관의 이미지도 과거엔 단순 무식형 설정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경찰은 상전벽해다. 드라마 속 주인공 경찰은 샤프한 엘리트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경찰에 엘리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씨앗은 1981년 경찰대 설립에서 뿌려졌다.


▷경찰대는 학비와 군역(軍役) 면제, 졸업 후 경찰서 형사반장급인 경위 임용 등 파격적인 혜택을 내걸었다. 수재들이 모여들었고 한 해 120명씩 배출된 졸업생은 간부직을 속속 장악해 갔다. 5월 기준 총경 583명 중 320명, 경무관 76명 중 51명이 경찰대 출신이다. 2014년 강신명 청장(2기)에 이어 지난주 민갑룡 청장(4기)이 배출됐다. 그런 경찰대가 개혁의 수술대에 오른다. 지금 같은 경찰대의 고위직 독점 현상, ‘라인 챙기기’를 깨자는 취지다.

▷최근 발족한 ‘경찰대학 개혁추진위원회’가 경찰대 개혁안 논의에 들어갔다. 일반대 재학생·졸업생도 편입하는 로스쿨형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학비 면제와 병역 혜택도 폐지된다. 경찰대 출신들은 억울해하는 분위기다. 경찰은 간부후보생(경위 임용), 사법시험 출신(과장급인 경정 임용) 등 경쟁 상대가 많은 탓에 같은 기수끼리도 승진 경쟁이 극심해 검찰처럼 기수 문화가 형성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우수 인재 충원이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016년 순경 공채 합격자 3126명 중 고졸 이하 학력은 5.2%에 불과할 만큼 경찰 인력 수준은 상향됐다. 로스쿨 출신들 사이에도 경감으로 임용되는 경력 공채는 바늘구멍 같은 인기 진로다. 게다가 경찰대 출신들이 상층부를 이뤘지만 드루킹 수사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경찰은 여전히 권력의 눈치만 살피는 B급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직 자체가 업그레이드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인재가 와도 소용없다. 경찰 개혁이 하향 평준화로 끝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