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은 “한국 축구 철학에 적합한 감독을 선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DB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그러면서 “축구협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축구인, 국제 이적 시장에 정통한 인물 등을 출처로 하는 기사는 걸러서 읽을 필요가 있다. 맞는 경우도 있지만 틀릴 때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동안의 기사가 모두 ‘아니면 말고’ 엉터리 기사는 아니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작금의 사달은 축구협회가 자초했다. 2회 연속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에 실망한 축구팬들은 4년 전 ‘울리 슈틸리케 깜짝 발탁’ 같은 시행착오를 더 이상 원치 않는다. 한편 언론은 ‘사회감시’라는 막중한 책무를 지니고 있다. 두 손 놓고 있다가 나중에 보도자료 나오면 그대로 전달하는 게 언론의 소임은 아니다.
‘월드컵이라는 대회 수준에 걸맞고,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의 격에 맞아야 한다. 또한 월드컵 예선 통과나 세계적 리그 우승 경험이 있어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결과(한국을 맡기 전에 거둔 업적)가 없었다. 결과 없는 감독은 선택하지 않겠다.’
축구협회가 밝힌 새 대표팀 감독의 선정 기준은 상당한 ‘수준’이다.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힌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과연 그런 기준을 충족시키면서, 연봉과 코칭스태프 구성 등 구체적인 계약조건까지 양측이 합의에 도달할 감독 후보가 몇이나 될까. ‘유명하기보다는 유능한 감독을 뽑겠다’는 의지 표명 수준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축구협회는 접촉설이 나돌았던 루이스 스콜라리 감독(브라질)에 대해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한국대표팀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실상 후보군에서 제외시켰다. 이는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한국대표팀에 최적의 감독이라고 낙점했어도 계약이 성사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실제로 협상 난항이 감지되고 있다. 이틀 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외국인 감독 영입을 위한 사재(私財) 40억 원 긴급 투입’은 그 증거다. 그렇게 모셔온 감독이 한국대표팀에서 연착륙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차원의 난제다.
축구협회는 9월 국내에서 열리는 친선 A매치(7일 코스타리카, 11일 칠레) 이전까지 새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 한국축구대표팀에 필요한 것은 감독의 빠른 부임이 아니라 제대로 검증된 능력 있는 감독이다. 그렇기에 9월 A매치는 큰 의미가 없다. 손발 맞출 시간과 자신의 색깔을 입힐 기간이 한 달도 안 될 새 감독에겐 이래저래 고역이다. 자신이 한 것도 없는데, 이기면 겸연쩍을 것이고 지면 곤혹스러울 것이다.
손자병법에는 네 종류의 장수(將帥)가 등장한다. 용장(勇將)은 지장(智將)을 이기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德將)보다 한 수 아래이며, 덕장도 복장(福將)에게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복장은 바로 운장(運將)을 뜻한다. 그런데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로 불린다. 운장이 아니면 버텨내기 힘든 자리다. 되돌아보면 2002 한일 월드컵 4강 쾌거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은 대표적인 운장이 아닐까.
아무쪼록 한국 축구를 희망차게 이끌어갈 복장을 학수고대한다. 그래서 2022 카타르 월드컵 때는 16강 진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달갑지 않은 ‘희망 고문’은 없었으면 좋겠다.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