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 김희원 디지털뉴스팀 인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 숨어 있다가 나왔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1일 오후 7시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땀에 젖은 회색 티셔츠를 입은 박정호 씨(58)가 노란 튜브를 끈으로 묶으며 말했다. 박 씨가 운영하는 파라솔 대여소는 이날 파라솔 300개 중 절반도 펴지 못했다. 튜브 300개 중 200개는 물 구경도 못하고 땡볕에 방치돼 있었다. 박 씨는 “지금까지 휴가철에는 파라솔이 없어서 못 빌려줬는데 올해는 절반 수준”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1일 오후 12시 반 경 부산시 해운대 해수욕장 모습. 피서객이 없어 파라솔을 다 펴지 못했고 튜브를 찾는 사람도 없다. 모래가 햇볕에 달궈져 행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박 씨의 속이 더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건 ‘오후 7시 마법’ 때문이다. 해가 질 무렵부터 해수욕장으로 인파가 쏟아져 나오는 것. 이 시간이 되면 해운대해수욕장의 풍경은 낮과는 180도 달라진다. 박 씨는 “낮에도 좀 나오시지…”라고 아쉬워하며 영업을 마쳤다.
유례없는 ‘슈퍼 폭염’이 해수욕장 피서 풍경마저 바꿔놓고 있다. 바다수영 ‘피크타임’은 낮 12시에서 오후 3시 사이다. 예전 같았으면 ‘물 반, 사람 반’인 시간대다. 이 시간에 파라솔을 다 펴지 못하면 그날 장사는 낙제점이다. 하지만 연일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계속되자 바다수영을 하는 사람 자체가 줄었다. 파라솔 대여소에서 일하는 방정걸 씨(67)는 “피서객이 줄어든 데다 돈을 안 내고 막무가내로 물건을 쓰려는 외국인들도 종종 있어서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한 낮 텅텅 빈 광안리 해수욕장
오후 7시가 되자 종일 조용하던 해운대해수욕장에는 피서객들이 끊임없이 모래사장으로 밀려들어왔다. 해변으로 건너가는 건널목은 사람이 너무 많아 경찰이 신호를 통제해야 할 정도였다.
1일 오후 8시경 해운대 해수욕장이 야간 해수욕을 즐기러 온 피서객들로 가득하다.
야간 사람 많은 광안리 수변공원
상인들도 하나둘 나타났다. 곳곳에서 “돗자리” “치킨”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낮에는 그늘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했던 피서객들은 모래사장 위에서 음악에 맞춰 춤까지 췄다. 낮에는 텅 비었던 화장실이 밤에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다른 해수욕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도 낮 피서객이 줄어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라솔 대여소를 운영하는 임주호 씨(37)는 “7월말 8월초에는 평일에도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붐벼야 하는데 너무 한산하다. 햇볕 때문에 늦은 오후가 돼야 해변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 매출이 지난해 10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대천해수욕장 7월 피서객은 41만 명으로 작년의 절반 수준이다.
한 낮 텅 빈 대천 해수욕장
텅 빈 대천해수욕장 거리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한유주 인턴기자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 송혜미 인턴기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