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폐막한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남북, 북-미 외교장관 회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북한이 회담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없이 대북제재 해제는 있을 수 없다며 신규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하는 등 압박의 강도를 한층 높였다. 북-미 간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중재외교를 가동하려던 우리 정부의 노력도 무위로 끝났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이번 ARF에서 11개국 외교장관과 회담을 하면서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은 끝내 거부했다. 회의장 주변에서 이뤄진 짧은 조우가 전부였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북측에 전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군 유해 송환 때 보낸 친서에 대한 답신이다. 비핵화 협상은 한 발짝도 진전을 보지 못하면서 정상 간 서신 교환으로 소통의 끈만은 유지하는 모양새다.
미국은 ARF 회원국들에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북제재의 지속 필요성을 주지시키는 데 주력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러시아 등의 제재 위반을 경고하며 국제사회의 단합된 행동을 강조했다. 미 재무부도 북한과의 불법 금융활동에 연루된 혐의로 러시아은행 등 4곳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초 ‘최대의 압박’이란 표현도 자제하겠다며 중단했던 추가 제재가 2개월 만에 발표된 것이다. 외신에는 북한의 제재 위반과 핵·미사일 활동을 경고하는 유엔 대북제재위 패널보고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런 북-미 간 신경전이 마냥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제재의 구멍을 넓히려 해도 국제사회 전반의 제재망을 뚫는 데는 한계가 있고, 미국도 북한 핵·미사일 능력 강화를 언제까지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 북-미 간엔 조만간 대결이든, 타결이든 무언가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남북관계 과속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정부만 조급해하는 분위기다. 이럴 때일수록 한미 공조를 강화해 북한이 헛된 기대를 버리도록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