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과 자율성 보장받은 美대학은 눈부시게 성장한 미국의 최대 경쟁력 日·中도 세계적 대학 육성하는데 한국대학은 정부규제에 “혁신 먼 길” 경쟁력 키우기위해 자율성 보장해야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한번은 이런 얘기를 했다. “150년 전에는 미국이 여러 가지 학문과 사상 면에서 독일을 따라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을 다녀오고 앞으로 100년 동안은 독일이 미국을 뒤따를 정도로 성장하지는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인류와 세계를 영도해 나갈 사상계의 지도자 탄생은 힘들 것 같았다. 원인을 생각해 봤는데, 대학 경쟁에서 미국이 앞서고 승리한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소감이었다.
독일과 유럽 국가에는 사립대가 없는 편이다. 국(주)립대가 있을 뿐이다. 정부에서 주는 예산에 한계가 있고 균등성이 필요해진다. 그런데 미국은 사립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재정적 자율성이 보장돼 있어 하버드대의 예산이 독일의 몇몇 대학 예산을 합친 것보다 앞선다. 최근에는 주립대의 약진이 눈부신 추세를 보인다. 자유로운 경쟁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과 유럽 대학은 그 한계를 극복하기 힘들어졌다.
K 교수의 견해에 따른다면, 인문학은 창조적인 개척정신을 보장하기 때문에 대학에 대한 규제가 심해질수록 정신적 미래를 제기할 가능성이 약화된다. 러시아 대학들이 침체 상태에 빠졌고 중국도 사회주의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 인문학적 사유를 규제하게 되면서 앞으로 100년은 세계무대에서 정신과 사상적 지도자나 리더십은 창출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가치를 인정하는 학자들은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다.
일본은 1세기 전만 해도 서양 학문의 지점이나 출장소 같은 위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일본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도 일본 학계는 모든 영역에서 서구 것을 받아들이는 데 열중해 있었다. 우리들 시대만 해도 도쿄대와 교토대를 제외하고는 창의적이고 영도적인 대학다운 대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은 판도가 달라졌다. 노벨상 수상자의 배출을 봐서도 그렇다. 뒤늦었으나 지금은 중국 정부도 세계적 대학 육성에 참여하고 있다.
잘 알려진 S대학의 총장이 있었다. 전경련 부회장으로 오래 일하다가 기독교 계통의 대학 총장직을 맡았을 때였다. 그분의 회고담을 신문에서 보았다. 정부가 경제계에 요청하는 압력 및 규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교육부의 대학에 대한 지시와 규제가 더 심했다는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생각도 했다. 참여정부 중간쯤이었을까, 정부 정책의 방향에 깊이 참여하고 있는 한 사람의 세미나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그가 교육 정책에 관한 발표를 하면서 중고교 평준화는 일단락되었다. 앞으로의 과제는 국립대들의 평준화가 남아있고, 사립대의 평준화까지 완성된다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나는 예상 밖의 정책의 발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이 예외일 정도로 소수라면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장래가 어두워질 것 같다는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것이 정부의 잘못은 아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회의 우리 대학들도 책임이 크다. 사실 대학다운 대학이 몇이나 있는지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시급한 것은 대학의 자율성이다. 유럽에서도 정부는 재정적 지원을 할 뿐, 교육의 자율성은 100% 보장한다. 미국 다수의 사람들은 역사에서 대학의 공로를 어떤 정권이나 정부의 업적보다 높이 평가한다. 대학이 교육부의 통제를 받는 일은 상상도 못 한다. 대학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자긍심을 갖춰야 하고, 정부는 대학의 존귀성을 높여줘야 한다. 재정적인 문제는 물론 지금과 같은 세몰이로 여론을 조작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를 위해 삼가야 한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