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서고악도, 신라악 입호무 (한국전통연희사전, 민속원, 2014)
12세기 일본에서 출간된 ‘신서고악도(信西古樂圖)’는 당나라 시절 유행한 공연을 기록한 책이다. 신라 공연도 나온다. 신라 것으로 나오는 ‘입호무(入壺舞)’는 항아리에 들어가 추는 춤이다. 탁자 두 개, 항아리도 두 개를 놓고 무희가 이쪽 탁자 위 항아리로 들어가 저쪽 탁자 위 항아리로 나온다. 요즘 마술사가 선뵈는 공간이동 마술의 원조다.
조선은 마술을 환술, 마술공연을 환희, 마술사를 환술사라 일컬었다. 환술사는 여러 장치나 숙달된 손놀림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눈앞에 선뵈었다. 환희는 진귀한 공연이었으나, 남을 속이고 놀래는 기예라는 통념 때문에 유학자는 좋지 않게 여겼다. 홍문관 부제학 이맹현은 성종이 중국 사신을 따라온 환술사의 환희를 즐기자 보지 말라고 상소했다. 허균의 형 허봉은 연행을 가 환술 공연을 보고 부정적 인상을 받았다.
부정적 통념 때문에 많은 환술사가 음지로 숨어들었다. 음지로 숨어든 환술사는 환술을 써 사기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조선후기 문인 서유영의 ‘금계필담’에 나오는 환술사는 거지꼴을 하고 다녔으나 환술을 써 진탕 먹고 마셨다. ‘금계필담’ 속 거지 환술사는 기방에 들어와 소매에서 돈을 줄줄이 꺼냈다. 또 환술사는 최면술을 써 기생을 희롱하고 떠났다. 거지 환술사 입장에서 본다면 환희를 보여주고 그 값으로 공짜 술을 뺏어 먹은 셈이었다.
환술은 부정적 인식 아래서도 공연으로 정착한다. 남사당패 공연에서 각 연희 선임자를 ‘뜬쇠’라 부르는데, 14명 내외의 뜬쇠 가운데 ‘얼른쇠’가 있다. 환술사다. 얼른쇠가 펼친 환희는 ‘금계필담’ 속 거지 환술사, ‘어우야담’ 속 전우치가 부렸던 환술과 비슷했을 것이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눈앞에 선뵈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환술사와 차력사는 닮은꼴이었다. 차력사 역시 환술사처럼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공연했다. 조수삼은 ‘추재기이’에서 ‘돌 깨는 사람’을 기록했다. 석공이 아니라 차력사였다. 이 차력사는 구경꾼이 모여들기를 기다렸다가 웬만큼 모였다 싶으면 차돌을 깼다. 단단한 차돌을 맨손으로 깼으나 단 한 번도 실패가 없었다.
환술사와 차력사는 사람을 놀라게 했고 보는 이를 즐겁게 만들었다. 조선은 예의와 범절을 중시하는 엄숙한 나라였다. 엄숙한 세상에서 백성은 환술사와 차력사 덕분에 가끔 왁자지껄 놀라고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