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라는 말을 들으면 긴 코와 서커스를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특정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이미 규정되어 버린 직관적 인식의 틀을 ‘프레임’이라 합니다. 미국 버클리대 조지 레이코프 교수(1941∼·사진)는 “가장 최악의 대응은 어떤 공격에 대해 그것을 반복하면서 방어하려는 것이다. 프레임은 부인할수록 오히려 프레임을 활성화시키게 된다”고 말습니다. 마치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코끼리가 더 떠오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프레임이란 ‘특정한 언어와 연결되어 연상되는 사고의 체계’라고 합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전략적으로 짜인 틀을 제시하여 대중의 사고를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며, 이 규정된 틀을 반박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프레임을 강화시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특정 인종이나 종교, 지역, 성에 대해 프레임을 씌워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해 왔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빨갱이’ ‘수구꼴통’ ‘김치녀’ ‘한남’ ‘맘충’같은 생경한 단어로 특정 대상을 프레임에 가두어 날을 세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지난번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태극기도 엉뚱하게 부정적 프레임에 갇힌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 월드컵 때 길거리 응원을 나온 시민들이 과거와 달리 태극기를 들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러한 프레임이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맥도널드가 지렁이 프레임을 벗어나는 데 힘들었던 것처럼 한 번 덧씌워진 프레임을 전환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프레임을 통해 쉽게 정치적 우위를 장악하고자 하는 시도가 반복될 겁니다. 영리병원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영리병원은 곧 의료 서비스의 양극화와 건강보험 체계의 붕괴라는 프레임에 갇혀 논의의 진전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최근에도 최저임금 인상, 대입 개편 등 수많은 이슈를 둘러싸고 프레임 전쟁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프레임은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복잡한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사실의 객관적 인식에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특정 프레임에 얽매여 있으면 열린 사고를 저해하며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프레임끼리 맞붙으면 갈등으로 확산되기도 합니다. 프레임이 강화될수록 합리적 설득이나 토론은 어렵습니다. 비판적 성찰을 통해 프레임(액자) 속에 있는 사진을 제대로 보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