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정치부 기자
그러나 메리 비어드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저서 ‘폼페이, 사라진 로마 도시의 화려한 일상’(글항아리)에서 서기 79년 8월 25일 베수비오 화산 폭발은 급작스러운 재난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최근 자연과학과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폼페이 주민 상당수는 화산 폭발 직전 잦은 지진에 위험을 감지하고 피난을 떠났다. 장거리 여행이 여의치 않은 만삭의 여인이나 가난한 서민들, 폭발 장면을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하려던 귀족 등이 대폭발의 희생자가 됐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사상 최악이라는 올해 폭염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갑작스러운 재난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환경부에 따르면 한국은 1954∼1999년 사이 10년마다 평균 기온이 0.23도 상승했으나, 2001∼2010년에는 평균 0.5도가 오르며 온난화 속도가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 2012년 발간된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 보고서는 남한지역 폭염일수가 연간 10.1일에서 △21세기 전반 13.9일 △중반 20.7일 △후반 40.4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부와 국회는 이제야 폭염 대책을 내놓겠다며 뒷북 대응에 나서고 있다. 1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재난안전법에 폭염이 재난으로 포함되도록 8월 국회에서 법 개정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2005년 당시 한나라당 이성권 의원이 처음 발의했고 20대 국회 들어서도 비슷한 법안이 9차례나 발의됐다. 자연재난 조항에 폭염 두 글자를 추가하기로 하는 데 13년이 걸린 것이다. 법 개정이 늦어진 데는 폭염 피해의 인과관계와 보상 기준이 애매하다는 이유로 법 개정을 계속 반대하다 지난달 24일 문재인 대통령 발언 이후에야 입장을 바꾼 정부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고밖에 볼 수 없다.
비록 늦었지만 정부와 국회는 이제라도 제대로 된 ‘맞춤형 폭염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한시적인 전기요금 인하로는 광범위한 폭염 피해를 충분히 예방할 수 없다. 저소득층과 고령층, 농어민 밀집 지역에서 온열질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최근 빅데이터 연구 결과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2008년 세계 최초로 기후변화법을 제정해 국가 차원에서 폭염 대응 매뉴얼을 수립한 영국 정부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지진 전조를 무시하고 아무런 대비책을 세우지 않다 재앙을 맞은 고대 폼페이 주민들의 비극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김상운 정치부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