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7일 맑음. 소나기. #291
Enigma ‘Return to Innocence’(1993년)
Enigma ‘Return to Innocence’(1993년)
어제 오후 2시쯤. 카페의 에어컨 바람이 지긋지긋해졌다. 야외와 통한 건물 계단참으로 햇볕을 쐬러 나갔다.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 건 그때다. 가끔 세상은 어떤 뮤직비디오를 일생에 딱 한 번, 나에게만 보여준다.
이번엔 이렇게 시작했다. 노랗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느닷없이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풍경 속 어른들은 그대로 아이들이 됐다. “꺄악!” 왠지 즐겁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고 빌딩 현관으로 뛰어드는 어른아이들. 바로 그 순간. 이어폰에서 독일 그룹 이니그마의 노래가 시작됐다. “허∼이야이∼ 하∼이요 아이아이야∼.” 고달픈 유목민족의 목축 노동요 같은 소리. ‘Return to Innocence(사진)’다.
‘약하다고 두려워 마/강하다고 잘난 체 마/맘속을 들여다 봐, 친구/자신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순수로 돌아가게….’
뮤직비디오는 과수를 따다 숨을 거두는 촌로의 일생을 역재생해 보여준다. 농부들은 접지 가위로 나무에 포도를 도로 붙이고, 씨는 뿌린 이의 손으로 되돌아가며, 닭털은 닭의 몸통에 다시 가 붙는다. 촌로는 어느새 청년이 돼 마을 여성과 수줍게 혼례를 올리며 그들은 다시 소년소녀가 돼 일기장에 꿈을 적는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