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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도 땀범벅… 15분 휴식? 꿈같은 얘기”

입력 | 2018-08-09 03:00:00

수도권 건설공사 현장 가보니






햇볕에 달궈진 콘크리트 위 온도는 수은주의 측정 한도인 50도를 가리켰다. 금세 옷이 땀에 젖어 축축해졌다.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3일 오후 1시경 경기 화성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은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열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근로자 40여 명은 공사 자재를 어깨에 이고 나르거나 레미콘을 거푸집에 부으며 쉼 없이 움직였다. 30여 m 떨어진 그늘막에서 휴식을 취하는 근로자는 아무도 없었다. ‘열사병 예방을 위해 1시간마다 15분 이상 쉬어야 합니다’라고 쓰인 공사장 곳곳의 현수막이 무색했다.

○ 전혀 지켜지지 않는 ‘의무 휴식시간’

분주한 작업장… 텅 빈 그늘막 3일 오후 4시 반경 기온이 40도를 넘나드는 경기 화성시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콘크리트 타설 작업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더운 날엔 1시간마다 15분 이상 그늘에서 쉬어야 한다는 게 정부의 권고사항이지만 휴게공간(오른쪽 사진)을 이용하는 근로자는 아무도 없었다. 화성=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날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와 함께 해당 현장을 점검한 결과 근로자 40여 명 중 현장에 설치된 ‘무더위 쉼터’ 4곳을 이용한 사람은 6명뿐이었다. 특히 콘크리트 타설 근로자들은 일손을 잠시도 놓지 못했다. 레미콘을 초당 10kg씩 쏟아내는 차량이 10대 이상 대기 중이었기 때문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건설 근로자처럼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이들에겐 적절한 휴식시간과 그늘로 된 휴게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어긴 사업주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처벌이 무거운 이유는 건설현장에서 폭염으로 숨지는 근로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4∼2017년 산업현장에서 열사병이나 일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숨진 4명은 모두 건설 근로자였다.

하지만 건설사 상당수는 이 규정을 무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권고한 휴식시간(폭염경보 시 1시간마다 15분 휴식)을 일일이 지키면 완공과 분양 등 후속 일정에 차질이 생겨 손해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취재팀이 찾은 현장사무소 안에는 타워크레인 전복을 막기 위한 풍속 감시계만 있을 뿐 현장의 기온을 실시간으로 전해주는 시스템은 없었다. 남궁태 건설산업노조 경기남부지부장은 “결국 건설사는 근로자가 폭염으로 쓰러지는 것보다 타워크레인이 넘어져 공사 기한이 늘어나는 걸 더 우려한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 “9층에서 작업하는데 휴게공간은 1층”

6일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의 한 오피스텔 건설현장에 마련된 무더위 쉼터에서 근로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쉼터엔 단열재와 쿨매트를 깔고 선풍기를 설치해 바깥(36도)보다 시원한 31도를 유지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6일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의 한 오피스텔 건설현장에선 건물 외벽에 대리석을 붙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9층 높이 비계(飛階)에서 작업하는 석공의 목덜미에 강한 햇볕이 내리 쪼였다. 건물 안은 바람이 통하지 않아 먼지가 가득했다. 한 석공은 “1층에 선풍기를 설치한 휴게공간이 있지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시간이 없어 그냥 여기(고층)서 쉰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이날 마곡지구 일대 오피스텔 건설현장 10곳을 둘러보니 작업장 가까이에 휴게공간을 만든 현장은 단 2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8곳 중 5곳엔 휴게공간이 아예 없었고, 3곳의 휴게공간은 작업장과 멀어 근로자가 이용하기 어려웠다. 탈의실이 멀어 길가에서 바지를 갈아입는 근로자도 있었다. 휴게공간이 없는 현장에서 일하는 서모 씨(56)는 “현장소장이 안 보는 곳에서 잠깐씩 더위를 식히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폭염이 지속되면 지진처럼 ‘국가재난’으로 보고 공사 기한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국토교통부와 협의 중이다. 다만 민간 건설공사의 경우 공공부문과 달리 공사 기한 연장을 강요하기 어려운 만큼 ‘폭염경보 시 1시간마다 15분 휴식’을 법령에 못 박고,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성=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조소진 인턴기자 고려대 북한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