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전체주의” 비판한 文, ‘1948년 정부 수립’ 교과서 고쳐 “1919년 臨政이 대한민국 건국” 정권과 史觀 다르면 통합 깬다니 이승만·김구 하늘에서 통곡할 듯
김순덕 논설주간
좌파 진영에선 헌법과 역사를 부정하는 주장이라고 일축할 것이다. 국가 구성의 4개 요소가 국토, 국민, 정부, 주권인데 1945년 5월 1일 임시의정원에선 “우리 의정원과 임정은 토지와 인민주권이 없는 정부”라는 발언까지 나왔다고 해봤자 통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럼 문 대통령은 왜 임정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따져서 19대 아닌 21대 대통령, 아니면 국무령과 주석까지 포함해 34대 대통령으로 고쳐 쓰지 않는지 묻고 싶어진다.
건국을 둘러싼 논쟁이 10년째 그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념 때문이라고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지적했다. 2월에 낸 ‘대한민국 정통성 확립을 위한 역사의 재정립’ 보고서에서다. 당연히 정통성은 1919년 대한민국을 건국한 임정에 있다는 게 민주당의 답이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하자는 정치세력의 주장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독점하겠다는 시도로서 국민 통합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교과서보다 권위 있게 ‘1919년 건국’이라고 선언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말끝마다 ‘촛불의 명령’을 절대반지처럼 들먹이며 정의와 정통성을 독점하는 것도 이젠 식상하다. 역사 해석을 역사가에게 맡기기는커녕 대통령과 다른 역사관을 말하면 통합을 해친다는 겁박은 ‘촛불 전체주의’로 보인다. 심지어 내년부터는 초등학교 5, 6학년 사회교과서에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아닌 ‘정부 수립’으로 배우게 만들어 놨다. 국정화까지 요란하게 안 가고도 교육과정만 살짝 고쳐 정부가 원하는 역사를 가르치는 세련된 통치술이다.
대체 왜 임정은 떠받들면서 1948년 탄생한 국가는 폄훼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민주연구원 자료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임정은 ‘좌우 이념과 노선을 초월해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들과 임시정부들을 통합시킨 명실상부한 대한민국통합정부’였다는 거다.
임정 해체를 외쳤고 나중엔 월북한 김원봉과도 합작했던 임정처럼 문재인 정부도 북한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불안하다. 특히 백범은 ‘독재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는 계급 독재’라고 갈파한 반공주의자임에도 1948년 5·10총선을 앞두고 결행한 평양 방문에서 김일성에게 이용당하기까지 했다.
만일 백범이 좌우 연립 정부부터 세우고 체제 선택은 뒤로 미뤘다면 어땠을까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뒤 동유럽 공산화는 좌우합작, 민족대단결 같은 명분으로 밀고 들어온 좌파 통일전선전술의 승리라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근본주의, 이상주의 DNA의 백범은 이를 꿰뚫어보지 못했고 이런 DNA는 운동권 출신으로 그득한 집권세력에 상당히 박혀 있는 듯하다. 북한 김정은이 아쉬워 손짓할 때마다 달려가는 문 대통령이 걱정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시대는 저마다 신(神) 앞에 직접 선다’는 말이 있다. 생각이 다르다고 죽이거나 숙청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라면 1919년은 정신적 건국으로, 1948년은 실체적 건국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본다. 화해와 치유, 국민 통합을 위해서라도 올해는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해낸, 물론 과오도 있었던 임정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특별히 추모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