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근동(中近東)에서 이란과 터키는 각각 샤와 파샤라고 불린 세속군주의 지배하에서 20세기 초 서구식 근대화의 맛을 본 대표적 국가다. 하지만 이란은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 장악됐고 터키는 에르도안 집권 이후 이란 정도는 아니지만 원리주의로 기울고 있다. 그것이 국내적으로는 독재로, 국외적으로는 반(反)서방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반발하는 내부 세력도 만만치 않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0일 터키산 알루미늄과 철강에 2배의 관세를 부과해 터키 리라화의 가치가 20%가량 폭락했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미국에 대한 공격적 태도를 거둬들이지 않자 터키발 경제위기 공포로 어제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거렸다. 터키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총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에 불과해 여파가 크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있지만 1990년대 멕시코발 위기와는 달리 미국이 위기 해결을 도우려 하지 않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1947년 냉전의 시작을 알린 트루먼 독트린은 그리스와 터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나왔다. 독일 엘베강의 동쪽에서 한반도의 북쪽까지 유라시아가 붉게 물들 때 두 나라는 서구 쪽 자유진영의 변방에 위치한 약한 고리였다. 그리스는 복지로 퍼주기를 하다 유럽연합(EU) 퇴출 위기를 겪었고, 터키는 러시아 및 이란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의 물불 안 가리는 펀치가 미국이 군사기지를 둔 터키에도 날아갔다. 동아시아 쪽 자유진영의 변방 국가이며 미군 기지가 있는 한국에도 경우에 따라선 그 펀치가 날아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