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목격담을 널리 퍼뜨린 레지스탕스의 영웅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5일 레지스탕스 아르센 차카리안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트위터를 통해 “마누치안 그룹 마지막 생존자가 사망했다”며 추모했다. 마누치안 그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저항했던 이민자 레지스탕스 그룹이다. 올 들어 마크롱 대통령은 레지스탕스 추모 글을 여러 번 올리고 있다. 나치에 점령당한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싸웠던 레지스탕스들이 잇따라 삶을 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101세로 눈을 감은 아르메니아 출신 차카리안은 이민자 레지스탕스 마지막 생존자였다. 프랑스가 나치군에 점령당하자 반(反)나치 책자를 나눠주며 해방운동을 하던 그는 “지금은 무기로 싸워야 할 때”라는 이민자 레지스탕스 그룹의 리더 미삭 마누치안의 말에 독일군 암살과 군수 열차 탈취 등의 무장투쟁에 뛰어들었다. 마누치안 그룹에는 이탈리아 그리스 루마니아 스페인 폴란드 출신과 독일 유대인까지 참여했다.
1943년 11월 여성 동료 레지스탕스 올가와 함께 파리 오르세 기차역에서 그룹 멤버들과 접선하려던 차카리안은 나치 경찰의 급습을 받았고 간신히 보르도로 도망쳤다. 마누치안과 올가를 포함해 23명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1944년 2월 남성 요원 22명은 모두 총살을 당했다. 올가는 독일로 옮겨져 단두대에 올랐다. 프랑스에선 여성 총살이 금지돼 있었다. 차카리안은 보르도에서 미군 부대를 도와주며 레지스탕스 임무를 계속 이어갔다.
자유해방군 2기갑사단의 마지막 군인 이브 드 다루바흐.
5월에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 해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자유해방군 2기갑사단의 마지막 생존자 이브 드 다루바흐의 별세 소식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알렸다. 97세로 삶을 마감한 다루바흐는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군처럼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당한 뒤 런던에서 자유해방군으로 활동했다. 그는 19세에 헌병경찰에 자원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런던으로 건너가 ‘파리 해방의 영웅’ 필립프 르클레르 장군이 이끄는 자유프랑 군대에 합류했다. 그는 1943년 튀니지에서 이탈리아 독일 연합군에 맞서 싸우다 턱이 부서지는 큰 부상을 입고 이집트로 후송됐지만 “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 없이 나의 친구들이 전쟁을 끝내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치료를 거부했다. 르클레르 장군이 이끄는 2기갑사단의 일원으로 1944년 8월 노르망디를 거쳐 파리로 입성했다.
4월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마지막 아나운서가 세상을 떴다. 1941~1944년 매일 밤 8시 30분 나치 치하에 숨죽여 지내던 프랑스인들은 몰래 식탁 밑에서 단파 라디오를 틀었다. 친나치 세력들이 대문 밖에서 귀를 대고 감시했기 때문에 소리를 줄인 채 들어야 했지만 베토벤 교향곡 5번 도입부에 맞춰 “여기는 런던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어로 말합니다”라는 프랑크 바우어의 오프닝 멘트는 프랑스인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는 영국 BBC의 프랑스어 채널을 통해 전파되는 ‘여기는 런던’ 프로그램을 통해 레지스탕스의 활동과 전 세계 동향을 전했다. 1918년 프랑스 남부 트로이 태생인 그는 1941년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당하자 런던으로 가 레지스탕스 라디오 방송 아나운서가 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당시 위험을 무릅쓴 바우어의 목소리는 2차 대전을 승리로 안내했다”며 애도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