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뉴욕 특파원
“여러분은 우리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매년 노트가 더 나아질 수 있게 영감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솔직히 매년 그렇게 하는 건 쉽지 않아요(웃음).”
이날 신제품 노트9을 소개한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사장)은 행사 막바지에 다시 등장해 애드리브를 보탠 영어 연설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리더의 솔직한 고백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이날 하루를 위해 밤잠을 설치며 신제품 개발에 몰두했을 삼성 임직원들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10년이 넘은 스마트폰의 혁신은 사실상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미국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130조 원) 시대를 연 애플마저 혁신적인 제품이 없다는 ‘혁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다. 혼자만 잘한다고 해서 최고가 될 수 없다. 이날 노트9 언팩 무대엔 삼성과 손을 잡은 글로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 스포티파이를 세운 다니엘 에크가 깜짝 등장했다. 삼성은 지난해엔 뉴욕타임스 최고경영자(CEO)를 무대에 세웠다.
이날 행사장에서 가장 크게 박수를 치고 환호한 이들은 삼성전자 북미법인의 현지 직원들이었다. 삼성 배지를 달지 않았다면 한국 기업의 혁신에 박수 치고 환호할 일이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한국 정치권에서 “삼성이 글로벌 1위 기업이 된 건 협력업체들을 쥐어짠 결과이며 작년 순이익 중 20조 원만 풀면 200만 명에게 1000만 원씩을 더 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 걸 알고 있을까.
경제부총리가 삼성을 방문한 걸 두고 “투자를 구걸하러 갔다”는 시각이 한국엔 있다. 하지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인구 2만6000명의 위스콘신주 시골 도시에서 열린 대만 회사 폭스콘의 공장 기공식까지 달려갔다. 기업 투자가 부진한 한국 경제가 거북이걸음을 걷고, 기업 투자가 늘어난 미국 경제가 3% 성장 시대로 복귀한 것을 우연으로만 볼 수 없다.
싫든 좋든 선진국은 글로벌 시장의 치열한 혁신 경쟁에서 살아남은 똘똘한 기업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다. 한국 대기업이 부를 독점하고 성장의 단물만 빨아먹는 괴물로 비판을 받고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1위를 지키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분투한 한국 기업 임직원의 땀과 눈물이 없었으면 오늘의 한국도 있기 어렵다. 따질 건 따지더라도, 그들 또한 월드컵 축구대표팀 못지않은 한국의 대표 선수라는 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날 하루쯤 논란을 접어두고 “고생했다”고 박수도 쳐 주고 어깨도 두드려 주면 어떨까. 그들은 격려와 위로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