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망명정부도 구별 못하는 아마추어적 역사 인식이 건국 100주년이라는 억지 만들어 3·1운동도 임시정부도 인정 못하는 북한 정권도 한 치 설득 못하면서 민족적 견지 운운하는 웃기는 현실
송평인 논설위원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의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구절을 통해 우리는 일찍이 폴란드 망명정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폴란드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기 전 제2공화국이라는 민주 정부가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치 독일에 쫓겨나 해외로 옮겨간 폴란드 제2공화국 정부는 스스로를 망명정부라고 부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1948년까지 제국(帝國)의 정부, 즉 대한제국 정부는 있었어도 민국(民國)의 정부, 대한민국 정부는 없었다. 그때까지 조선인은 한 번도 민국의 대표들을 자기 손으로 뽑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자들은 너무나 당연히 스스로를 임시정부라고 부르고 임시라는 수식이 필요 없는 정부의 건설, 즉 건국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오늘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을 광복절 73주년으로 덮어씌워 건성건성 지나간다. 북한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70주년을 맞는 9월 9일 성대한 기념식을 계획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내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건국 100주년으로 기념하고자 하는 것이 정말 민족 화합의 견지에서였다면 먼저 북한 김정은에게 제안하고 화답을 받아내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고 나서 국민에게 호소를 해도 호소를 해야 한다. 그러나 나온 결과는 고작 3·1운동 100주년을 같이 기념한다는 것이었다.
건국 100주년은 고사하고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조차도 북한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제안이다. 북한의 ‘조선력사’는 임시정부의 행태를 독립을 구걸하러 다닌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의 사대주의 망동으로 규정한다. 해방 정국에서 임시정부를 누구보다 배척한 것이 김일성의 북조선노동당과 박헌영의 남조선노동당 세력이었다.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는 바로 이 공산주의자들의 임시정부 배척 노선을 따르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도 북한으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일 것이다. 3·1 인민봉기는 김일성이 주도했다는 헛소리는 집어치우더라도 북한은 3·1운동의 대부분은 비폭력·무저항주의로 인해 실패했다고 보고 그 결과로 태어난 부르주아적 임시정부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본다.
나는 박근혜 정권 시절 칼럼을 통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만들려는 일부 우파의 시도를 비판한 적이 있다. 건국절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날이 아니다. 그렇다면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 과거의 한 시점을 반드시 건국의 기점으로 잡아야 한다면 1948년 8월 15일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그러나 건국절이 국민 통합에 기여하기보다는 국론 분열만 조장한다면 굳이 건국절을 만들 필요가 없고, 나아가 미래에 북한까지 포함하는 한반도에서 더 큰 의미의 ‘네이션 빌딩(nation-building)’을 위해 유보해 두자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건국 100주년을 들고나온 것은 ‘네가 건국 70주년이라 하니 나는 건국 100주년이라 하겠다’는 유치한 발상이다. 건국 70주년도, 건국 100주년도 그만뒀으면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는 임시정부에 합당한 평가를 하고 대한민국 정부에는 정부에 합당한 평가를 하면 된다.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을 축하하고 내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축하하면 될 일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