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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우경임]김정남 암살범 유죄

입력 | 2018-08-17 03:00: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은 ‘비운의 황태자’로 불렸다. 어머니 성혜림은 김정일과 만날 당시 이미 월북작가 리기영의 아들과 결혼한 상태였다. 김정남은 이 ‘잘못된 만남’으로 1971년 태어났다. 9세에 북한을 떠나 일생 동안 해외를 전전했다. 북한으로 돌아간 건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되고 나서였다. 사후 한 달 반이 지나 비닐과 끈에 겹겹이 싸인 채 암살 용의자들과 함께 평양행 비행기에 올랐다.


▷16일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은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시티 아이샤(26), 도안티흐엉(30)에게 유죄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범행 당일 두 여성은 2분 33초 만에 김정남을 붙잡고 치명적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랐다. 암살에 관여했던 북한인 8명은 모두 말레이시아를 떠났고 “리얼리티 쇼인 줄 알았다”고 주장하는 여성 2명만 법의 단죄를 받게 됐다. 당시 국정원은 김정남 암살이 실행될 때까지 유효한 명령을 뜻하는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라고 했다.

▷김정남에 대한 김정일의 부정은 각별했으나 이복동생이 후계자로 지목되고선 끊임없이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2012년 4월 김정은에게 편지를 보내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응징 명령을 취소해 주기 바란다. 피할 곳도 없고, 도망갈 곳은 자살뿐”이라고 애걸하는 처지였다. 젊은 독재자는 ‘유일영도체제’ 아래서 백두혈통 김정남의 존재 자체만으로 불편했던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남북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의 한국 내 주가가 치솟았다. 김정은을 만나 악수한 뒤 “너무너무 영광”이라고 말한 걸그룹도 있다. “자유스럽고 호탕했다. 다행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우리나라에서 큰 기업의 2, 3세 경영자들 가운데 김정은만 한 사람이 있느냐”(유시민 작가) 등 호평도 쏟아졌다. 하지만 그가 이복형 김정남을 잔인하게 죽이고, 북한 주민의 인권을 탄압해온 어두운 면이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1년 6개월 전 김정남 피살 사건은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까지 거론됐으나 지금은 다 잊은 듯하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