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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의 갯마을 탐구]〈9〉양식장 폐허, 박물관으로 부활하다

입력 | 2018-08-17 03:00:00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특별할 것 없지만 특별한 마을. 언제부턴가 동해 바닷가의 풍경이 된 카페나 음식점 하나 없는 마을이 있다. 심심할 정도로 한적하지만 투명한 물에 파랑 물감 한 방울을 떨어뜨린 듯, 쪽빛 바다에 수많은 갯바위가 들쑥날쑥하다. 갈매기가 온 섬을 하얗게 뒤덮은 작은 섬이 동화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은 1970, 80년대 분위기를 풍긴다. 해변 중앙에 초라하게 서 있는 콘크리트 건물은 40여 년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존재감이 없다. 건물 내부는 수십 년 동안 쌓인 물건과 쓰레기로 가득했다. 강원 삼척에서 처음으로 가리비 종패를 기르던 곳이지만 당장 허물어도 누구 하나 아쉬워하지 않을 폐허다.

그런데 이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으로 꾸며 볼까?” 사실 박물관이라면 뭔가 특별한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새것에는 없는 사람의 손때와 이야기가 모두 박물관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삼척 갈남마을 주민과 함께 생활하며 조사·연구한 기록물을 건물에 담아 보기로 했다. 며칠간 청소하고, 삶의 현장을 관찰한 기록물과 주민이 사용하던 생업도구를 채워 넣었다. 닳아 해진 해녀잠수복과 물질 도구, 머구리 잠수 장비와 빛바랜 사진 등을 주민들은 스스럼없이 내놓았다. 주민과 함께 생활하며 기록한 사진과 영상물로 생동감을 주었다.

내팽개쳐진 건물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어민들의 역사를 간직한 기억의 장소로 재탄생한 것. 보여줄 게 없는 삶이라며 입버릇처럼 말하던 노인들의 가슴에 자긍심이 돋아났다. 냉랭한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도 손자손녀를 데리고 마을박물관을 둘러보며 자신의 삶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어두운 내부를 환하게 밝히고, 적막을 깨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건물을 빛나게 했다.

이 소박한 박물관을 석 달만 운영하고 닫는다는 게 국립민속박물관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마을박물관에서 해설하던 주민과 건물을 기꺼이 내어준 주민들이 전시를 계속 하기를 원했다. 운영 지원을 약속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래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벌써 5년째 외부 지원 없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마을박물관 해설사의 열정과 건물을 조건 없이 사용하도록 허락해 준 주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을박물관 해설사인 이옥분 씨는 대학생 시절 잠깐 갈남마을에 놀러왔다가 어부와 결혼했다. 누구보다 갈남마을을 사랑하는 그는 해설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마을박물관으로 달려온다. 단지 해설에 머물지 않고 마을박물관 앞에서 공연, 마을극장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한다.

마을박물관이 지속될 수 있었던 건 국립민속박물관의 조사, 전시기획과는 별개로 해설사의 열정,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10여 평의 작은 공간에 진열된 물건과 사진으로 삶의 현장과 노동, 시름, 환희를 이야기해 준다. 그리하여 방문객에게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 밤하늘의 달이 되고 별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삼척갈남마을박물관의 꽃은 이옥분 해설사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