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일인의 삶/브룬힐데 폼젤 지음·토레 D 한젠 엮음·박종대 옮김/328쪽·1만5000원·열린책들
나치 독일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로 일했던 브룬힐데 폼젤은 “우리는 단지 끌려 들어갔을 뿐”이라고 말한다. 나치의 만행을 몰랐다는 이 여인의 항변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독일인의 삶’에서 ‘그때’를 회상하는 폼젤. 열린책들 제공
당시 대부분의 독일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정치에 무관심했다. 나치가 정권을 잡았던 1933년 총선. 그는 독일 국가인민당의 깃발이 멋있다는 이유로 표를 던졌다. 오전에는 유대인 보험회사에서, 오후에는 나치 당원 밑에서 일하는 이중생활(?)도 서슴지 않았다.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나치 당원이 됐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치 권력의 중심부로 자리를 옮겼다.
1942년부터 나치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여비서로 일했던 브룬힐데 폼젤 이야기다. 그는 지난해 1월 10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독일인의 삶’(2016년)에서 그의 항변은 일관되고 단순하다. 자신을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평범하고 무지하며 나약한 인간일 뿐”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나치의 만행을 인정하면서도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을 독가스로 죽인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는 몸담았던 나치를 위해 통계를 부풀리거나 괴벨스의 발언을 타이핑하는 등 “별 대수롭지 않은 일들”을 하면서도 의무를 다했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웠다”고 회고한다. 전쟁 막바지에도 도망을 택하지 않았다. 지하 벙커에서 손수 독일의 항복 깃발을 만들면서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자신이 맡은 일을 어떻게든 잘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되고 이기적인 건가요? 그게 설사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는 걸 알았더라도 말이에요.”
악행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는 해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도 떠오른다. 그에게 과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들의 부상에서 나치 독일의 징후가 엿보인다. 나치는 민족의 부흥을 약속했고 전쟁 패배와 경제난으로 고통받던 독일 국민은 이에 화답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무지, 무관심은 곧 ‘죄’다. 한젠은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사라질 때 민주주의가 말살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당신은 혹시 또 다른 브룬힐데 폼젤이 아닌가. 그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