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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도 자율도 없는 현상유지… 진보-보수 모두 “교육개혁 참사”

입력 | 2018-08-18 03:00:00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수능전형 선발 30%이상 결정




꼬박 1년간 사회적 논쟁을 불러온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이 17일 발표됐다. 현행과 달라진 게 거의 없어 1년간 갈등과 혼선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대학들에 수능 위주 전형(정시모집) 비율을 30% 이상 하라고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따르지 않는 대학은 총 예산 559억 원 규모의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

주로 내신 위주 수시전형으로 학생을 뽑을 수밖에 없는 지방대 사정을 고려해 학생부 교과전형 30% 이상 운영 대학은 ‘수능 30% 선발 룰’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산업대, 전문대, 원격대(사이버대 등)도 이 룰에서 제외된다.

○ 수능 비율 30% 미만 대학 35개뿐

현재 전국 196개 대학(4년제 일반대) 중 △수능 선발 비율이 30%가 안 되면서 △학생부교과전형 선발 비율도 30%가 안돼 둘 중 하나를 늘려야 하는 대학은 35개 대학에 불과하다. 사실상 이 대학들만 이번 대입제도 개편의 영향을 받는 셈이다.

35개 대학의 절반 이상은 지방대로, 이들은 수능보다 학생부교과전형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서울지역 주요 대학 중에서는 고려대(16.2%)와 서울대(20.4%), 이화여대(20.6%) 정도만 수능 선발 30%를 크게 밑돌고 나머지 대학은 이미 30%가 넘거나 약간만 상향 조정하면 30% 기준을 맞출 수 있다.

그럼에도 대학들은 수능으로 30% 이상을 뽑아야만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예산을 주겠다는 정부 발표에 당혹해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이 예산은 원래 학생부종합전형을 늘려야 받을 수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정반대로 수능을 늘려야 주겠다니 정부의 교육철학 자체가 없는 것”이라며 “대학 자율성 보장도 말뿐”이라고 꼬집었다.

○ EBS ‘70% 직접연계’→‘50% 간접연계’

수능 과목 구조에서 초안과 달리 기하와 과학Ⅱ를 수능 선택과목에 포함하고 탐구과목에서 문·이과 교차 선택 의무화를 포기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유웨이중앙교육 이만기 평가이사는 “시험 보지 않겠다는 과목을 다시 보겠다는 것이어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라며 “사실상 기초과학계의 거센 반발에 교육부가 항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이번 발표로 문·이과 통합은 전혀 의미가 없게 됐다”며 “융합 인재라는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는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교육부는 고3 교실이 EBS 문제집 풀이 현장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반영해 EBS 연계율을 현행 ‘70% 직접연계’에서 ‘50% 간접연계’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히려 학생 부담만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양정고 이종한 교사는 “절반을 연계하겠다니 안 볼 수도 없고, 간접방식이다 보니 예전처럼 성적이 오르기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 “공론화 결과 무시” “포퓰리즘 정책”

교육부는 이날 학생부 기재방식 개선 및 2025년 이후 고교교육 혁신 방향도 함께 발표했다. 먼저 학교별 상 남발 및 특정 학생 몰아주기의 원인으로 지적된 학생부 수상 경력 기재와 관련해 수상 경력을 한 학기당 1개 이내로, 고교 재학 중 총 6개까지만 적을 수 있도록 했다. 자율동아리도 한 학년당 1개만 간단히 적도록 했다. 소논문(R&E) 기재는 없앴다.

자기소개서 작성은 현행 4개 문항 5000자에서 3개 문항 3100자로 줄였다. 만약 대필이나 허위 작성이 발각되면 지금은 0점 처리하지만 앞으로는 무조건 탈락이나 입학을 취소할 예정이다. 교사추천서는 폐지된다.

현 정부의 핵심 교육공약이자 고교교육 혁신 방안의 하나인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당초 예정보다 3년 늦은 2025년에 하겠다고 밝혔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듣고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따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때부터 전 과목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를 도입하겠다”며 “당장 내년 고1부터 ‘진로선택과목’은 A-B-C 3단계로 구분해 석차등급이 아닌 절대평가 방식으로 성적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계는 진보와 보수, 학부모단체와 교사단체를 불문하고 일제히 교육부의 최종 결론에 비판을 쏟아냈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이종배 대표는 “공론화 결과 정시 45% 선발을 요구하는 1안이 1위였는데도 교육부는 아무 근거 없이 30% 이상을 내걸었다”며 “1년간 여론 수렴과 공론화 결과를 모두 무시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천교육교사모임 등 32개 교육 관련 단체도 “이번 안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아마추어리즘과 포퓰리즘에 기반을 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임우선 imsun@donga.com·박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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