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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천광암]막 오른 일자리 재앙

입력 | 2018-08-20 03:00:00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1980년대 중반 경제 관료로 입문해 슈퍼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A 씨를 최근 사석에서 만났다. 좌중의 화제가 최저임금과 일자리 문제로 향하자, A 씨는 갑자기 자신의 아내 얘기를 꺼냈다. 30년 넘게 경제 관료로 일하는 동안 그의 부인이 경제정책을 언급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들어 변화가 생겼다. A 씨가 집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아내가 슬그머니 다가와서 이런 말을 건넨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서 경제가 큰일이라는 말을 당신한테 꼭 좀 전해 달라는 제 친구들이 많아요.”

지난해 월평균 31만 명 수준이던 취업자 증가 수가 올해 2월부터 급감하더니 7월에는 5000명 선까지 떨어졌다. 30만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구걸’ 논란 속에 작년 말부터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신세계 등 대기업을 돌며 약속받은 일자리가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4306개다. 5개 그룹이 정부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비상한 결심으로 한 달 동안 만들어낼 수 있는 일자리의 70배가 7월 한 달 동안 사라진 셈이다.

어떤 사람은 대기업들이 만들어내는 양질의 일자리와 음식점 종업원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어떻게 단순 비교할 수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절박함의 무게를 따지면 식당에서 잡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대기업의 번듯한 정규직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취업자 증가 수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 원인은 대부분 국민이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단골 식당이나 집 근처 편의점만 가 봐도 모를 수가 없다. 친숙하게 눈인사를 주고받던 ‘식당 이모님’이 언제부터인가 안 보이기 시작했고, 주인한테 물어보면 “최저임금 때문에 월급 주기 힘들어서 내보냈다”는 한숨 섞인 대답이 바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심각한 고용위기의 원인을 모르는 사람들은 청와대와 경제부처, 여당에 몸담고 있는 이들뿐이다. 진짜 몰라서 모르는 것이 아니다. 소득주도성장론에 생채기가 날까봐서 현실에 눈을 감은 채 이달은 인구구조 탓, 다음 달은 날씨 탓, 그 다음 달은 공무원시험 탓, 또 그 다음 달은 자동화 탓을 하면서 군색한 핑계 돌려 막기를 하고 있다.

당정청의 이 같은 모습은 충격적인 7월 고용동향이 발표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17일에는 김 부총리를 비롯한 장관들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모여 긴급 경제현안 간담회를 열었으나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서는 “영향이 일부 업종과 계층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좀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에는 5000만 국민 모두가 참여한다. 하나의 경제현상에도 환율과 금리 등 수백 가지 외생 변수가 작용하고, 경제주체의 심리적 동기까지 가세한다. 그래서 올바른 진단 없이, 올바른 처방이 나올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로또 복권을 사는 타이밍은 늦을수록 좋다고 한다. 길을 걷다가 죽을 확률이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높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막판에 사야 살아서 당첨금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만큼 희박하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이다.

정확한 원인 진단 없이 내놓은 고용대책이 일자리를 늘려주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어쩌면 로또를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