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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재 교수의 지도 읽어주는 여자]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담아 찰나를 역사로…

입력 | 2018-08-20 03:00:00

<26>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1948년 간디가 암살되기 직전의 모습을 담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 당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을 만난 간디는 그의 사진집을 보며 “죽음이야”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Henri Cartier-Bresson, Magnum Photos/Europhotos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1908∼2004)은 프랑스 노르망디 실공장 집 장남으로 태어났다. 미술학교를 다녔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유학 시절 지리학자 엘리제 르클뤼의 ‘진화, 혁명, 그리고 무정부주의적 이상’을 읽었다. 독일 철학 교수 오이겐 헤리겔이 선불교에 대해 쓴 ‘활쏘기의 선’은 모든 것을 비워야 도에 이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줬다.

‘콩고 여행기’의 저자 앙드레 지드, 말년을 에티오피아에서 보낸 시인 랭보를 흠모한 그는 아프리카를 동경해 1931년 코트디부아르로 떠난다. 사냥꾼으로 1년을 살다 귀국한 23세의 보헤미안은 멕시코로 향한다. 멕시코시티 빈민가인 라 칸델라리아 데 로스 파토스 뒷골목에서 예술가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후치탄 빈민가, 황량한 푸에블라, 오악사카 로데오 경기장, 미소가 매력적인 테우안테펙 모계사회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53개 민족이 뿜어내는 멕시코의 뜨거움을 카메라에 담으며 사진작가가 됐다.

특히 파리에서 만난 자바의 무용수, 라트나 모히니와 결혼하며 날개를 단다. 1947년 로버트 카파 등과 함께 설립한 통신사 매그넘에서 아시아 지역을 맡게 된 것도 아내의 영향이 컸다. 지금 아시아경기가 열리는 모히니의 고향 자카르타는 16세기부터 유럽 상인들이 드나든 국제무역항으로,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기독교가 공존하는 도시였다.

인도는 사진가 인생에서 결정적 나라였다. 인도 경전인 바가바드기타를 읽고 현지어를 구사하는 이슬람 아내 덕분에 현지 상류층과 쉽게 연결됐다. 1948년 1월 30일 간디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다 그가 힌두교도의 총에 맞아 운명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간디의 마지막 모습과 슬픔에 빠진 인도 국민, 장례식을 담은 사진은 세계적인 특종이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중국 국민당의 최후, 인도네시아 독립 등 역사의 현장을 담은 사진을 세계로 송출했다. 영국 조지 6세의 왕위 계승식과 처칠의 장례식에서는 군중의 표정과 반응을 끈질기게 관찰해 담았다. 러시아, 중국, 쿠바 등 사회주의 국가 민중의 삶도 생생하게 포착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사진으로 호평받던 그는 조각가 자코메티의 마지막 순간도 찍었다.

1933년 첫 전시 뒤 1946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 뉴욕에는 그의 열성 팬이 많았다. 재즈광인 그는 뉴욕 할렘가 흑인과 남부 뉴올리언스 예술가들에게 매혹됐다. 하지만 이란 여행 중 자동차 사고로 손가락 신경이 손상돼 춤을 출 수 없게 된 아내는 좌절했고, 30년 결혼 생활은 막을 내렸다. 50년간 40개가 넘는 나라에서 50만 장 이상의 필름을 사용한 베테랑 사진작가는 은퇴를 선언한다.

사진작가와 재혼해 프랑스 남부에서 화가로 새 삶을 시작한 그의 호주머니에는 랭보의 시집과 라이카 카메라가 늘 함께했다. 96세의 여름(8월), 그는 죽음이란 암실 속으로 사라졌다.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