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고교생 의무전학 예외… 보호제도 허점
올해 5월 성폭력 피해 청소년 쉼터에 들어온 소영(가명·16) 양은 두 달이 넘도록 ‘강제 결석’ 중이다. 이전처럼 학교에서 친구들과 지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학교들은 '성폭력 피해 청소년'인 소영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5년 전 아빠의 '몹쓸 짓'이 시작됐다. 학교에서 시행한 심리상담에서 소영이가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되면서 피해 사실이 밝혀졌다. 학교는 아빠를 경찰에 신고했고 소영이는 쉼터로 보내졌다.
3개월 만에 겨우 소영이를 받아주겠다는 학교가 나왔다. 쉼터에서 ‘교육청에 민원을 넣겠다’며 집요하게 매달린 결과다. 소영이는 다음 주부터 새 학교로 등교할 예정이다.
성폭력을 당한 청소년 가운데 상당수가 전학을 갈 학교를 찾지 못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고교생이 심각하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초중학생은 ‘의무 전학’이 가능하지만 성폭력 피해 고교생은 학교장 추천 및 재량으로 전학이 이뤄진다. 문제는 성폭력 피해 청소년을 ‘문제아’로 인식해 전학을 받지 않으려는 고교가 많다는 점이다. 학교가 떠밀어서 원치 않는 전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전학이 늦어져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 가까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이 생기고 있다.
11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박모 양(18)은 피해 사실이 밝혀진 지 2주 만인 올해 4월 사실상 ‘강제 전학’을 했다. 박 양은 전학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학교 측은 “아이에게 새로운 환경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전학을 권유했고 결국 학교를 옮겼다.
쉼터 관계자는 “심리상담 검사에서 박 양이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되자 부담을 느껴 다른 학교로 보내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북 지역의 한 실업계고에 다니던 김모 양(18)은 이웃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전학하려 했지만 인근 실업계고 두 곳에서 모두 거부당했다. “가해자가 학교를 찾아와서 난동을 부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양은 끝내 전학할 학교를 찾지 못해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학교에서 성폭력 피해 청소년의 전학을 거부할 수 있는 이유는 성폭력피해자보호법에 의무 전학 조항이 없어서다. 가정폭력 피해 학생의 경우 초중고교생 모두 의무 전학 대상이다. 성폭력 피해 아동(초중학생)은 경찰 수사 자료 등 최소한의 피해 사실만 입증되면 각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전학을 받게 돼 있다. 그런데 성폭력 피해 청소년(고교생)에 대해선 강제 조항이 없다. 대전의 쉼터 관계자는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학교 다닐 권리’를 박탈당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법 개정 움직임도 없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장 추천 과정을 교육청에서 확인하긴 어렵다”며 “민원이 많지 않아 법 개정 추진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한유주 인턴기자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