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서울 대중교통은 지난 22년 동안 크게 변해 많은 곳이 냉난방이 된다. 그런데 냉방이 너무 세다. 우리 집에서는 에어컨을 주로 24∼28도로 조절한다. 너무 추우면 견디기 힘들다. 여름에 서울에서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은 바로 지하상가다. 서울에는 지하상가가 참 많다. 잠실, 강남, 영등포, 고속터미널에 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지하상가들은 4대문 안 도심에 있는 지하상가들이다.
처음으로 서울의 제일 긴 지하상가인 을지스타몰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1999년쯤. 네덜란드인 친구에게서 소개를 받았다. 그는 시청역부터 동대문운동장(현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라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좀 더 짧은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까지 지상에 올라오지 않은 채 걸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 외에 이미 알고 있었던 지하상가는 종로에도 몇 개 더 있고 청계천과 명동, 소공동, 남대문시장, 회현에도 있다. 네덜란드 친구는 원래 지하상가가 또다시 북한과의 전쟁이 발생할까 해서 공습 대피소로 건설됐다고 했다. 나중에 역사학자인 친구에게 물었더니 1971∼1974년 지하철 1호선 공사 때 지하로 판 것이고 첫 설계 당시 의도한 기능은 정말 대피소였으며, 후에 상점들이 들어섰다고 했다. 이제 수백, 아니 수천 개의 다양한 점포가 서울의 지하상가에 자리 잡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중앙우체국 사이에 있는 회현지하상가에는 화장품 외에 중고 음반, 옛 화폐, 엽서, 헌책, 우표를 판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유적을 발견할 수 있다. 식당과 카페도 있어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잠시 앉아서 1959년 발매된 김시스터즈의 앨범을 살까, 아니면 미군정시대의 선언문을 살까, 일제강점기 엽서를 살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명동 지하상가는 해외 친구와 친척에게 줄 만한 현대적 기념품을 사기에 제격이다. 게다가 케이팝 관련 기념품을 사기에도 적합하다. 얼마 전 유튜브로 어느 재미교포 여성이 바로 그런 상품을 찾으러 명동지하상가를 둘러보는 동영상을 봤는데 이 동영상은 인기가 아주 많았다. 시청지하상가에서는 근사한 모자 가게를 찾았는데, 머리가 좀 큰 편이라 맞는 사이즈가 없었다. 아직도 지나갈 때마다 아쉬워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써볼까 하지만 역시나 너무 작아 보여서 애써 눈을 돌리며 그냥 지나친다.
요약하면 서울 도심 지하상가에서는 별난 것들을 다 찾아볼 수 있다. 만약 기후 변화나 다른 재난 때문에 지상으로부터 도망쳐서 지하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소규모 생존자 무리는 여기서 꽤나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호기심이 생긴다면 서울시설공단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좋을 듯하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