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첫 포퓰리즘 연정 80일 경제장관 “현금지원 폐지” 밝히자… 극좌 대표가 앞장서 무산시켜
문제는 돈이다. 조르게티 차관은 필요한 예산 규모나 조달 방안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유럽연합(EU)이 이 프로젝트에 한해선 지출제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EU는 GDP 대비 재정적자가 3%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결국 국가 빚을 늘려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국가 부채는 이미 GDP 대비 130%에 달해 그리스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올해 3월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극우 동맹당과 극좌 오성운동은 3개월 가까이 이어진 무정부 상태를 끝내고 6월 1일 함께 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정권을 탄생시켰다. 정부 출범 80일이 지나면서 이탈리아 연정이 포퓰리즘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복지 확대에 초점이 맞춰진 오성운동(극좌)과 감세에 초점이 맞춰진 동맹당(극우)이 결합하면서 포퓰리즘의 파괴력은 더 강력해지고 있다.
주세페 콘테 총리는 “빚을 줄여가며 경쟁력 있는 예산안을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이 정권의 대주주들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동맹당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단일 세율 도입과 연금 혜택을 줄이는 개혁 해체는 반드시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성운동 루이지 디마이오 대표도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첫 초안이 제시될 것”이라고 밝히는 등 물러설 기미가 없다.
도저히 재정 충당의 방법이 나오지 않자 조반니 트리아 경제장관은 내년 예산안에 이전 민주당 정부가 EU와 합의한 부가가치세 인상을 포함시키고, ‘렌치 보너스’를 폐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6년 도입된 렌치 보너스는 연소득 2만6000유로(약 3300만 원) 이하 저소득층 1100만 명에게 매달 80유로씩 현금으로 지원해주는 제도다. 이것만 폐지해도 90억 유로(약 11조 원)를 아낄 수 있었다. 그러나 수혜자들이 반발할 조짐을 보이자 디마이오 대표는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수혜자들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지 않을 것”이라며 경제장관이 제시한 두 가지 재정 충당안을 모두 무산시켰다.
새 정부가 펼치는 포퓰리즘 정책들이 국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며 동맹당과 오성운동의 지지율은 선거 이후 계속 상승해 현재 60%에 육박하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