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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우울증, 어른의 관심으로 막을 수 있다”

입력 | 2018-08-22 03:00:00


우리나라 소아·청소년 우울증은 세계적으로도 심각한 수준이다.

박성근 아산정신병원 정신과 과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몇 년 전,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남자 중학생이 병원을 찾아왔다. 학교에서 실시한 심리 검사에서 심각한 우울증 결과를 받고 서다. 아이가 오토바이 폭주족이라고 해서 걱정했더니 아이는 대뜸 내게 “죽는다고 해도 상관없어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아이에게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검사로 알아보자고 했다. 처방해 주려 했던 치료약은 아이가 거부했다. 당장은 자살 징후를 보이지 않아 우선 검사 날짜만 잡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병원을 다시 오기로 한 날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아이가 집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아이가 내게 왔던 그날이 떠올랐다. 내가 아이를 죽음으로 몬 것이나 다름없다. 아이의 마음을 더 헤아리고 내가 아이와 같은 편이라고 말해줬어야 했다. 나는 아이가 숨기고 싶어 했던 마음을 다 내보이게 다그치고 아픈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심한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소아·청소년의 우울은 불안, 게임중독, 충동조절 문제, 학습 부진, 대인관계 악화 등과 짝을 이루면서 나타난다. 정작 우울은 이런 증상들 뒤에 숨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 초기에는 아이가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 학령기 아이들 2명 중 한 명이 우울하다는 통계가 있다.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아이들의 마음의 병은 더 깊어지고 있다.

아이 우울증의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의 양육 환경과 교육 시스템의 문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덩달아 바뀌는 교육정책, 학력 위주의 경쟁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사회성을 키우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일진 아이에게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마음먹고 열심히 했는데 주변에서 언제까지 버티는지 눈치를 줘서 포기를 했다고 한다. 또 한번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똑같으면 스스로 바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아 포기한 적도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결국 부모 중 한 명, 선생님 중 한 명이라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사랑해주면 된다. 적어도 1년 이상 어른에게서 지속적인 관심을 받은 아이는 일단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율이 줄고 서서히 자존감과 자신감을 찾기 시작한다.

소아·청소년 우울증 치료에서 약은 핵심이 아니다.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작은 나무 같은 아이에게 어른들이 든든한 부목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이 아이의 회복에 가장 중요하다. 또 중요한 것은 시스템의 개혁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한 방향으로 예측 가능하게 지속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부모들에게는 포기도 자책도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포기하지 말고 아이와 함께 외롭고 어두운 길을 헤쳐 나가주기 바란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박성근 아산정신병원 정신과 과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