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명 작가
―현직 의사로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있나.
어느 시대든, 누구든 삶은 참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것에도 중독되지 않고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우리가 왜 맨 정신으로 살기 어려운지에 대해 생각했다. 혹시 우리에게 자신을 잃어버리려는, 쉽게 말해서 정신 줄을 놓아버리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이성과 합리로만 이뤄진 서양의학을 배웠다. 성형외과 의사로서 나는 수많은 수술을 하면서 동시에 마취를 경험했다. 마취는 서양의학이 동양의학과 현저히 차별되는 점이다. 외과 의사들은 전신 흡입마취제와 수면마취제를 이용해 환자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의식을 소실시키고 수술을 한다. 의사는 잠시 환자의 의식을 없앨 수는 있지만 정작 사람의 심층의식과 각성, 잠과 꿈을 다루는 데에는 서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거의 아는 것이 없다.
우리에게는 동양의 정신적인 자산이 많다. 나는 여기에서 새로운 가치의 생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쓰게 된 이유다.
―소설 마취를 독자들이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마취를 하면 사람의 의식이 소실됐다가 다시 깨어난다. 나는 마취가 죽음과 탄생에 대한 하나의 은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양의학을 배운 동양인으로 마취라는 소재를 가지고 잠과 꿈, 삶과 죽음의 의미를 풀어나가면 독특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취는 의학적 소재라는 서구적 그릇에 동양적인 정신세계, 불교의 공사상, 힌두교의 윤회사상 등을 담아내는 작업이었다.
―마취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있나.
5년 전 병원 원장실의 가장 깊숙한 곳, 마취약을 저장하는 약장의 자물쇠를 열고 전신마취제 약병을 꺼내들다가 약병을 놓칠 뻔한 적이 있다. 그 순간 ‘이 병이 깨져 전신 흡입마취제가 바닥에 가득 깔리면 나는 혼자 약의 증기를 마시고 쓰러져 죽을 수도 있겠구나’ 했다. 아무도 날 깨우러 오지 않고 혼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마취라는 소재로 의학재난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 계획이 있나.
의학 소재로 우리의 삶과 죽음의 이면에 담긴 진실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쓰고 싶다. 현재 4번째 작품을 집필 중이고 K-pop처럼 K-medical literature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 해외로도 진출하고 싶다. 그래서 한국 소설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KL 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와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