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효진 베베템 대표(오른쪽)가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로 성공하는 과정에는 남편의 지원도 한몫했다. 7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양 대표와 남편이 함께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사업 논의를 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날 양 대표의 일과는 오전 5시에 일어나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오전 7시 남편과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인 뒤 오전 9시 30분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다. 이후 사무실에 출근한 양 대표의 근무시간은 오후 3시 30분까지다. 어린이집 하원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CEO(최고경영자)’,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는 생활이 쉽진 않지만 그는 “엄마만 바라보는 아이 덕분에 더 독하게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시장에서 약자로만 여겨졌던 엄마들이 아이디어로 창업해 CEO로 변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른바 ‘맘타트업’(엄마+스타트업)의 등장이다. 이 중에는 이전 직장에서 출산 때문에 ‘경단녀’(경력단절 여성)가 돼야 했던 여성도 적지 않다. ‘재취업이 어렵다면 직접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과감히 도전하는 것이다. 이들이 만든 직장에는 재택근무, 엄마 직원 우대 등 새로운 조직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휴대용 자외선 살균기를 개발한 김윤주 프라임테크 대표(왼쪽)의 사무실에는 종종 김 대표의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8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김 대표와 아들이 살균기를 살펴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아이를 낳고 한동안 멍하게 지내던 양 대표에게 남편이 말했다.
“효진아, 네가 일할 ‘판’이 없다면 ‘판’을 바꿔 봐.”
양 대표는 육아용품을 살 때마다 주변에 묻거나 인터넷으로 후기를 뒤졌던 경험을 떠올렸다. 여기서 착안해 1년의 준비 끝에 개발한 앱이 바로 베베템이다. 현재 안드로이드용 앱은 100여 건이 다운로드됐고 사용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아이폰용 앱도 이달 내 출시된다.
2015년 7월 프라임테크를 세운 김윤주 대표(39)도 아이를 낳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김 대표는 ‘휴대용 자외선 살균기’를 만들었다. 손에 쥐는 물건은 무조건 입에 넣으려는 아이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프라임테크 사무실에는 김 대표의 초등학교 3학년 아들도 있었다. 김 대표는 “여름방학이라 아들이 여기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말했다.
엄마들의 창업에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다. 김 대표는 투자자나 바이어 앞에서 사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혹시 남편 사업을 본인 것처럼 하는 것 아니냐” 등의 비아냥거림을 들었다. 양 대표도 투자자를 만날 때마다 “아줌마한테는 투자 안 해요” “여자라고 또 육아 아이템을 들고 왔네” 등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엄마라는 편견을 깨고 창업한 이들은 ‘편견 없는 직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베베템은 직원을 채용할 때 처음부터 육아경력자를 우대한다. 업무도 대표인 양 대표를 빼고는 모두 재택근무를 한다. 프라임테크는 회사 차원에서 직원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김진수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여성과 엄마들의 창업을 이제 하나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인정하고 정부도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이우연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졸업